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 Aug 19. 2023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햇빛이다.

2023.08.18. 일기 

 야근을 할것 같다던 남편이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그는 용기를 내어 그동안 내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고,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했다. 


 맞았다. 나의 걱정과 근심이 맞았다. 그는 다시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나모르게 시작했다. 지난 몇개월간 짐작했지만 답을 듣지 못한 그것의 답을 오늘에 드디어 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지난 몇개월간 예감하면서 마음을 단련한 덕도 있고, 이상하게 나는 항상 큰 일 앞에서 덤덤하다.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먼저 잘못을 이야기하는 것도 '용기' 이겠지. 그는 용기를 냈다. 그도 그동안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밉다.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미안하다는 저 말들이 노력하겠다는 저 말들이 진심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여자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어 힘들어하는데, 그런 나를 내팽개치고 저럴수 있나 싶기도하고. 그때문에 아이에게도 잠깐 소홀했던 그이기에 그것때문에도 밉다.

머리로는 용기를 내준것이고, 그도 고통스러웠을거라 생각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머리를 늘 따라가지 않는다. 

나를 또 속였고, 몇개월간 나를 힘들게했으며, 그 작은 사건들에도 그는 완전히 솔직하지 않았다. 


 또 아이가 매일 자라서 예쁜행동만 골라하는 지금이 우리순간에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인데, 이 순간을 또 허무하게 날려버린 그가 한심하기도 하다. 




 그렇게 묻고 또 물어도 절대로 말하지 않던 그가 갑자기 스스로 입을 연 이유가 궁금했다.  그전에도 그는 먼저 말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결국 내게 들키거나, 일을 끌다가 끌다가 더이상 숨길수 없을 만큼 커졌을때 그때서야 입을 똇다. 

그는 아이때문도 있었고, 며칠간 내가 너무 다정하고 상냥해서라고 말했다.  다정하고 상냥했기에, 그말을 해도 질책받지 않을 것 같아서 였을까? 나의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가 그에게 이야기할 용기를 준것 일까? 


그와의 엔딩이 해피엔딩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도 배웠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것은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빛이었다 말하지 않은 그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뿐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어야지) 아무튼, 지난 몇개월간 차가운 바람을 불며 그에게 추궁해도 듣지 못했던 말이 단 이틀의 따뜻한 햇빛으로 들을 수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뿐 아니라 모두와의 관계에서 마찬가지 일것 같다. 항상 따뜻한 햇빛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그와의 엔딩은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나의 인생의 엔딩은 해피엔딩일것이라고 믿으며 하루만 슬퍼하고, 내 할일을 하며 또 나의 일상을 지켜가야겠다. 



오늘의 즐거운 일

1. 저녁에 먹은 김치오뎅전골이 맛있었다.

2. 장난감 도서관 다녀오면서 본 여름 하늘이 예뻣다. 

3. 어제 처음 뒤집기를 시작한아이가 (어제는 뒤집어진 모습만 보여줌),  오늘 뒤집기를 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서 기뻣고, 그걸보며 우울한 엄마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즐겁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