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7.의 일기
08.16.광복절 다음날 큰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오랜기간 병상에서 지내셨던 분이다. 지난주말 꽤나 위독하다고 들었고, 어쩌면 이번 고비는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여러차례 고비를 넘기신적이 있고, 설령 고비를 넘기시지 못하더라도, 그날이 이렇게 금방 올줄은 몰랐다.
외할머니는 큰아들에게 최고의 정성을 다 하시는, 아들바라기셨다. 6남매중 유일하게 집을 사주셨고 (그래봤자 시골의 작은 집이지만) 그 이외에도 엄마 형제들이 알고있는 또는 알고있지 못하는 여러 물질적 지원을 최선을 다해 해주셨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한글도 모르시는 외할머니가, 아들에게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해줄수 있는 모든것을 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외삼촌은 형제들 중 유일하게 자리잡지 못한 자식이었고, 유일하게 부모의 속을 썩이는 자식이었다. 그리고 그랬던 자식이 50초반에 뇌출혈로 쓰러져, 침대에서만 생활했으니 그 긴시간 외할머니가 얼마나 속을 졸이셨을까.(아픈 손가락이라 할머니가 그리 정성을 다하신걵, 아니면 큰아들이라 과잉보호 하여 삼촌이 저러한 삶을 살게 된건지는 잘 모르겠다. )
외삼촌이 돌아가셨다고 했을때, 사실 모두 외할머니를 더 걱정했다. 이렇게 아들 바라보기 이신분이 혹시 쓰러지거나 정신이라도 놓지않을까 모두 그걱정이 가장 컷다.
형제들도 큰외삼촌을 안쓰러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원망도 했다. 자수성가하여 경제적으로 풍족한 작은외삼촌은 외할머니의 생계는 물론 많은 것들을 신경쓰고 책임지고 계시는데, 본인이 할머니께 드리는 용돈들이 모두 큰외삼촌에게 가는것 같아, 용돈을 많이 드릴 수 없다고 했다. 우리엄마도 할머니 애간장만 녹이는 본인의 오빠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였기에, 막상 정말 돌아가시고 나니 모두 진심으로 슬퍼했다. 나도 아주 어릴때 몇번 뵌게 다이지만, 그런 나도 꽤나 슬펐다. (걔다가 나는 어린 아이때문에 지방에서 하는 장례식장에 갈 수없으니 마음이 더 그랬던것 같다. )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시니, 인생 허무하고 덧없는것 같기도 하고, 뭐그리 아등바등 사는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일상을 살아갔다. 어제는 아이의 예방접종과 검진을 다녀오고,오늘은 아이의 첫 뒤집기를 보며 너무 기뻐했다.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셔서 슬픈 와중에도, 내속에서 최근에 태어난 어린 생명의 작은 손짓과 발짓을 보면서 세상 처음 느껴보는 기쁨을 느낀다.
오늘의 즐거웠던 일
1. 아이가 뒤집었다.
2. 밤늦게 본 디즈니 무빙이 재미있었다.
3. 방문간호사와의 대화시간이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