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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Aug 16. 2023

해결사보단 들어주는 이가 필요할 때도 있다.

2023.08.15. 의 일기 

오늘은 기필코 아이옷을 사고 말리라, 아이옷 아웃렛에 갔다. 생각보다 싸지 않아서 슬펐고(2년이나 지난 옷이 겨우 50프로 할인이라니!) , 원하는 종류의 옷들이 별로 없어서(나는 반팔 여름 내의가 사고 싶었는데 죄다 가을 겨울 옷들 뿐)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손품을 판 덕분에 원하는 몇 가지 종류의 옷을 구매하였다.


 휴일에 집에서 쉬고 싶은 남편이었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운전대를 잡은 것을 안다. 아이를 낳고 우리는 꽤 많이 싸웠고, 요 며칠 전에도 크게 싸웠는데, 어쨌든 남편은 싸울 때마다 '노력'을 한다. 그가 생각하는 노력이란 육아를 더 많이 하고, 이렇게 주말에 내가 원하는 곳에 함께 가주는 것이다. 


 그의 노력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나는 즐겁고 스트레스를 푸는 이 시간이 그에게는 나를 위한 노력이기에 즐겁지 않은 시간이 될까 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네가 즐거워서 나도 즐거웠다는 그의 말이, 그의 애정표현인지 진심인지, 진심이라면 내가 즐거운 만큼은 즐겁지 않았던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만큼 온전히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너무 큰 욕심이겠지. 아니면 그냥 이런 생각하지 않고, 해주는 노력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고 고마워하며 사는 것이 정답일까??


 온전히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서 살기에 온전히 같이 느끼고 같아진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 한 것일까?

 

 나는 왜 매사에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졌는가



 회사일이 바쁘다고 했다. 회사일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힘내'라고만 말했다. 회사일이 바쁘고 힘들다고 하니, 나는 나름 육아와 집안일은 최대한 나 혼자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그는 계속 힘들어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힘들었다. 


  집에 와서도 온전히 쉬지도, 집안의 일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그를 보면,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가, 또 한편으로는 그래 남자는 힘들 때 동굴로 들어가야 한다지, 하며 모르는 척 내버려두려고 노력했다가, 또 참지 못해서 무슨 일이냐고 들들 볶기도 했다. 나에게 말하지 않는 그 자체가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다 오늘 잠자리에 누운 남편에게 무심결에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남편의 일은 안다. 단지 새 부서에서 새로 맡은 그 일이'정확히 어떤 일'인지 몰랐다. )  그 일이 왜 어렵고 힘든지 물었다.  남편은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왜 힘든지 어떤 어려움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정말 자세히 술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그동안 나는 '묻지' 않았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구나. 나는 문제를 듣고'해결해주는 사람'은 되었지만 '잘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그에게 물을 때는 늘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 해 주려고 물었다. 때로는 해결이 아니라 그냥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나는 늘 해결책만 주고 있으니,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이야기를 하지 못했구나. 그가 이야기 안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겠구나 






 나의 엄마아빠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을 원하지만,  도무지 그 방법을 몰랐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좋은 예시가 있었으니,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지만, 나는 따라 할 예시도 본보기도 없다. 

 

 그래서 항상 어렵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이 이 문제를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밥 먹고 나오는 길에 하늘이 예뻤다.

옷가게에서 한 시간 내내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지친 남편이 그냥 가게 앞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해결하자고 했는데, 그렇게 먹은 부대찌개는 꽤 맛있었다.  






오늘의 즐거운 일

1. 부대찌개가 맛있었다.

2. 그래도 마음에 드는 아이옷을 몇 가지 구매할 수 있었다. 

3. 남편이 잠자리에 들기 전, 내가 그에게 업무에 대해 질문을 했고, 술술 이야기해 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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