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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Nov 26. 2023

나도 퇴근이 필요하다.  

11월 25일 토요일

 아이를 낳고 남편은 계속 바빴다. 매일 야근에 주말출근에. 어쨌든 그래도 남편은 나름 육아를 돕는다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우선 여기서 돕는다는 표현자체가 잘못되었지) 그도 바쁘기에 시간을 쪼개서 하는 도움이 성에 차지 않을뿐더러, 아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리 자라서, 이제 아이에게 필요한 육아가 매일 바뀌는데 바쁜 아빠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그래서 또 결국 그렇게 내 차지가 되어서 거의 내가 하고 있다. 


 지난주는 월화수목 무려 4일을 아팠다. 장염에 몸살까지, 이렇게 아픈데도 남편은 회사일이 바빠 연가를 낼 수 없었고, 언제나 참을성 하나만큼은 전 세계 1등이 나는 열이 펄펄 나는지도 모르고,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남편은 연가만 안 낸 것이 아니라 그날 월화수 모두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 , 이유식을 만들고, 분유를 먹이고 했다. 나는 4일간 두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 너무 아픈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에너지가 도무지 나지 않아서 병원도 가지 못하고 그냥 타이레놀만 먹으면서 버텼다. 


 목요일에 우리 집 큰 행사가 있었는데 (아파트계약) 그 행사가 끝나고 나니 남편도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아프다며 금요일엔 조퇴하고 병원을 가고, 토요일에도 아침 일찍 그는 병원을 갔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그는 직장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토요일 오후에 혼자 아이를 보는데,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우선 남편이 병원을 가는 것 자체가 화가 났다. 엄밀히 말하면 남편이 병원을 가는 행위는 잘못된 게 아니고 , 맞는 행위이지만 , 3박 4일을 꼬박 앓은 나는 병원 한번 못 가고 애를 돌봤는데 저렇게 자기 몸만 챙기는 행위가 미워 보였다. 


 그리고 그놈의 결혼식. 그렇게 모든 지인의 결혼식에 모두 다 참석해야 하는 것일까?

매일 얼굴 보는 사람 결혼식에 안 가면 미안해서 어쩔 수 없다는데, 매일 집에서 보는 나한테 미안한 건 괜찮은 걸까??


 남편이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냐고 한다. 본인이 논 것은 아니고 계속 일을 하느라 늦은 거며, 그런와중에도 아침이라도 편히 자라고 본인은 아침수유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혼식도 정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맞다. 그는 잘못한 게 없는 것 같다. 그는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것 같고 나는 화가 난다.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가까이 살면서도 내가 아프다고 말했는데 한번 와주지 않는 친정엄마도, 이렇게 매사에 잘 참고 남편 생각부터 하는 K장녀로 나를 키운 친정엄마도 미웠다.  너무 원망스러웠고 바쁜 남편도. 이렇게 바쁘게 일 시키면서 개코딱지만 한 월급을 주는 남편 회사도 다 너무 싫다. 


내 몸과 마음이 지쳤다. 나도 퇴근이 필요하다. 나도 연가가 필요하다.


아이가 너무 예쁘지만 나는 지쳤다. 아직까지 아이에게 짜증을 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참고 버티다 어느 날 무너져서 죄 없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되고 싶지 않은 그런 엄마가 될까 봐 무섭다. 



그래도 기분 좋았던 것들

1. 아이가 이제 짝짜꿍도 할 줄 안다.

2. 내가 화내고 짜증 냈지만, 남편이 이성적으로 잘 넘겨줬다. 그래서 우리 크게 싸우지 않았다.

3. 비질란테 재밌다. 비질란테 말고도 재미있는 새로운 드라마를 몇 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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