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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목 Jan 21. 2019

차 생기기 전엔

차 없인 못 살아요

새 차를 샀습니다. 할부 36개월짜리 트럭입니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으리라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오릅니다.


어릴 적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우리 집엔 차가 없었습니다. 사는 곳이 시골마을이라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아주 불편한 동네였지요. 그런 곳에서 자가용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어렸던 저에겐 별로 재미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가끔씩 버스를 타고 싶다며 낭만적인 얘기를 할 테지만 어릴 때 저는 자동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면 오가는 자동차를 보면서 '태워주진 않을까'내심 기대를 해보았지요. 간혹 그 기대가 간절했던지 아는 사람이나 같은 방향으로 가던 사람들이 태워주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얼만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꽉 차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덜컹거리는 시골길에서 중심을 잡는 일을 하지 않고 쌩쌩 달리는 것이 저는 어른이 돼서 자동차가 산다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꼭 태워주리라 다짐했었습니다. 


농촌에서 자가용이 없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혹자는 '그러면 옛날 어르신들은 다 굶어 죽었겠네...'라고 하겠지만 세대가 세대인 만큼 지하철 없는 서울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빠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는 곳엔 가장 빠른 배차시간이 30분입니다. 그마저도 시외버스나 30분에 한 대씩 오고 시내버스는 1시간에 한대가 가장 빠른 배차시간입니다. 스마트폰 메신저로 빠르게 빠르게 약속시간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요즘에 1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로 시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불행하게도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1시간이나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야 택시라도 부르면 될 터이지만 제가 사는 동네에서 읍내까지는 만 오천 원이나 되는 거리였기에 엄청나게 급할 때나 택시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변했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시대가 변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어른이 되었고 자동차가 생겼지만 정류장을 지날 때면 기다리는 사람들을 거의 태워주지 않습니다. 간혹 손을 드시는 어르신이라면 모를까 나이가 비슷하거나 특히나 여성분들이라면 더더욱이나 태우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땐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땐 젊은 사람이나 어르신이나 여자나 남자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태워주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습니다. 타는 사람이나 태워주는 사람이나 순수한 마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문, 뉴스를 봐도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흉흉한 이야기는 항상 우리 곁에서 회자되는 요즘입니다. 농촌이라고 '순순한 정'이 남아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때는 이미 많이 지나온 것 같습니다. 


가끔, 차를 타고 달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정류장을 바라보곤 합니다. 또 하나의 어린 나의'태워주진 않을까'하는 간절함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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