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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농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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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목 Oct 06. 2022

타인의 밥을 빼앗아야 할 때에

모호한 경계에서

 4년 전 일이다. 8천만원이 넘는 콤바인을 계약했다.  그때 나는 5천 평 정도의 논농사와 1천 평 남짓의 밭농사를 하고 있을 때였고 내 농사일보다는 주변 삼촌들의 농사일을 거들며 살고 있을 때여서 콤바인이 들어오던 날 주변 삼촌들은 물론 많은 지인들이 우려와 조금의 비난의 목소리를 냈었다. 


기계 사다가 망할 거냐? 
네 농사 규모에 맞게 사야지...

 처음부터 축하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곳은 영농대행이라고 하는 보조사업이 있어 취약농(65세 이상, 여성농, 등)을 대상으로 농사일에 필요한 경운작업, 모내기, 수확 등을 적은 금액을 받고 시행하고 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농촌은 극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농사를 짓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연령은 60세 이상인 경우가 많다. 한 해가 거듭될수록 영농대행의 수혜자들은 점 점 늘어날 것이었다. 그 말은 내가 8천만원이 넘는 콤바인을 사서 남의 벼를 베어 주고 돈을 받는 영업을 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좁다는 것이다. 50세 미만인 사람이 논농사를 하는 경우에는 콤바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50세 이상 65세 이하인 사람들이 주 고객이 될 것이었다.

 농기계는 쓰기 나름이지만 기름칠 잘하고 쓴다면 콤바인 같은 경우 3000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그 이상도 충분히 쓸 수 있지만 콤바인은 3천 시간 정도 쓰게 되면 기계가 노후되어 쉽게 망가지면서 수리비가 많이 나오게 된다. 더군다나 바쁜 영농철에 기계가 망가져서 말썽을 피우게 된다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내가 내 벼를 베는 데만 콤바인을 사용한다면 5천 평을 수확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대략 7시간 정도이며, 이 계산 대로라면 1년에 7시간을 쓰게 된다는 것이고 즉, 400년을 더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말이란 것이다. 물론 아무 계획을 갖지 않고 구입한 것은 아니다. 5천 평의 농사를 짓고 있지만 앞으로 더 늘려 그보다 더 많은 벼농사를 지으리라는 포부를 갖고 있었고 내가 친한 지인들의 벼를 벨 것이라는 계획을 같고는 있었다. 누가 봐도 그저 막연한, 그저 기계가 갖고 싶은 그런 계획 말이다.

 4년이 지난 오늘 나는 1만 5천 평의 벼농사를 짓게 되었고 밀농사도 1만 평 짓게 되었다. 더불어 영업으로 콤바인을 타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대략 1년에 10만 평 정도의 수확작업을 하게 되었다. 1년에 150시간 정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 사용량으로는 대략 15년 이상을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10만 평이라는 콤바인 영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영농대행이라는 보조사업이 있기에 그 수혜를 받지 못하는 틈새시장은 이미 기계를 가지고 있는 삼촌들의 영업장이었기에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타인의 밥을 빼앗은'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걱정이 많았다. 기존에 하던 분의 것을 내가 하게 되면서 욕을 먹게 되진 않을까... 그래서 영업을 한다고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그냥 조용하게 누군가 물어본다면 '저는 이 가격에 벼를 베어 드리고 있습니다'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주변분들은 말한다. 


벼를 베고 안 베고는 주인 맘이지
남이 하는 걸 빼앗으면 안 된다
주인 입장에서 제일 싸고 잘하면 장땡이지

 그래서 나는 벼를 베어 달라고 부탁이 오면 먼저 베던 분이 없었느냐고 물어본다. 그리고는 연세가 되시면 영농대행을 맡기시면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괜한 욕을 먹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그런데도 영업이 들어온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로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콤바인 영업이라는 것이 흔히들 앞으로 벌고 뒤고 까진다고 하듯이 큰돈이 되지는 않지만 해마다 갚아야 하는 콤바인 대출금을 충당하고 용돈벌이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지나고 보면 후회되는 선택은 아니었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훌륭한 선택이었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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