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숨어있다.
조용히 다가온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는 안개라고 했고 나는 보슬비라고 했다.
어제 분위기에 취해
선물 받은 와인을 잔에 붓고 입에 털어 넣었다.
와인은 얼굴에 한가득 머물렀다.
세상도 아직 잠이 덜 깬 듯
어둑어둑한 토요일 아침,
퉁퉁 부은 남편이 퉁퉁 부은 나에게
조깅을 하러 가잔다.
나는 말없이 돌아누웠다.
대답 없는 나에게 남편은 슬며시 미끼를 던진다.
"조깅하고 오는 길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 올까 했는데."
커피 냄새가 벌써 코끝에 와 닿는듯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몸은 무겁고
이불 안은 포근하다.
"오늘 결혼식 가야 되는데
이렇게 부은 얼굴로 괜찮겠어?"
남편은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운동이라면 질색하는 내가
결코 외면하지 못할 이유를 잘도 찾아
내 몸뚱이를 움직이게 만든다.
느릿느릿 운동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축축한 공기가 얼굴에 닿는다.
그는 안개라고 했고 나는 보슬비라고 했다.
미세한 물방울들이 얼굴에 내려앉는 개천가의
토요일 아침은 고요했다.
남편이 저 멀리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도를 늦췄다.
촉촉이 젖은 풀들은 빛이 났다.
은빛 구슬을 달고 있는 토끼풀,
초록 솜뭉치처럼 포근해진 쇠비름,
물가에 어느새 나만큼 자란 물억새와
샛노란 꽃을 달고 섰는 창포.
점점 걸음이 느려진다.
가만히 서서 물안개 낀 개천가를 둘러본다.
이른 아침,
늦은 봄비와 함께하는 이 시간.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지저귀는 이 순간.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