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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퍼도 꾸준히 May 22. 2020

뻘짓의 역사 2

로맨스 소설 쓸 수 있을까요?

내 두 번째 뻘짓은 결혼 후 일어났다.


나와 남편, 둘의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집을 한채 마련하려면 얼마나 걸릴까를

번을 계산해보았다.

퇴직할 때까지 허리를 졸라매야

원하는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자연스레 부수입 창출에 눈이 갔다.


아마추어의 눈으로 봤을 때,

부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꽤 여럿 있었다.


유튜버 - 콘텐츠 없음. 얼굴 내놓을 자신은 더더욱 없음.

웹툰 작가 - 그와 내 그림 실력은 유치원생과 비교해도 되는 수준임.

작곡 - 학교종이도 겨우 치는 실력.

파워블로거 - 매일매일 정성스러운 글을 쓸 성실함이 없음.

오픈마켓 - 새벽마다 동대문 다닐 자신 없음.


이렇게 많은 제침에서

부수입을 위하여 당당하게 살아남은 직업

다름 아닌 인소 작가였다.

인터넷 소설(=인소)을 연재하는 것은

둘이 어찌어찌 머리를 짜내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강 찾아보니 인소 중에서도 로맨스 분야가

가장 돈을 많이 번다는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로맨스 소설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건방지고도 무지한 자의 용기였을 뿐이다.




글을 쓰기 전에 우리 둘은

나름 조합이 괜찮은 콤비처럼 보였다.

나는 글을 쓰는데 자신감이 있었고

(후에 처참히 깨졌.)

남편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는 재주가 있었다.

(로맨스는 예외였다.)


남편이 아이디어를 내고

내가 그 생각을 글로 줄줄 써 내려가기만 하면

로맨스 소설 대박작가의 길은

탄탄대로,

공모전 1등 자리는

따 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소설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로맨스 소설(책으로든, 인소로든)을

전혀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이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나마도 로맨스 소설은 찾아보는 타입이 아니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웃음을 짓고

떠가는 구름에도 눈물을 흘릴

여고시절,

시대를 휩쓸었던 귀여니 소설에도

전혀 흥미가 없었다면 이해가 될까.

친구들이 몇이나 밤새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노라며

꼭 읽으라고 내 손에 책을 쥐어줘도

나는 앞표지만 몇 장 보고는 이내 책을 덮었다.


남편은 무협과 판타지라면 나름 일가견이 있었으나

로맨스라면 알레르기를 일으킬정도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 자! 다움"에 목숨을 거는 타입으로

엄마와 함께 신데렐라류의 드라마는 봤을지언정,

나와는 로맨스 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더 멋있는 근육을 가져볼까

하루 종일 운동 생각을 하고,

'센 사람'이 나오는 소설과 영화만 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로맨스를 고집했다.

로맨스가 제일 잘 팔리니까.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으니까.


로맨스를 즐기지 않는 둘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로맨스 소설을 쓰는 일은

생각 외로 즐거웠다.

우리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황금알을 품고 있는 기분이었다.


업로드만 하면

당장이라도 웹소설 플랫폼의 메인에 걸리고

백만이 넘는 구독자가 생길 것 같았다.

상금에, 계약금에, 일확천금이 굴러들어 와

직장을 당당히 때려치우고

통장에 두둑이 쌓이는 인세를 보며 웃음을 지을 것 같았다.

소설이 유명세를 타고 웹툰, 드라마, 영화로 번지면

우리 인생은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쭉 펴진 길을 우아하게 걸어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둘 사이에서의 글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우리의 황금알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로맨스에 정통한 사람이 글을 써도

잘 된다는 보장이 없는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인소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도 하나 없이

글을 올려서 대박이 난다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멋있는 집도 사고

양가 부모님께도 노후 걱정은 붙들어 매시라

큰소리를 뻥뻥 칠 것 같았는데

조회수는 추적이 가능할 만큼 저조했다.


우리는 매일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고

지인들을 닦달해서 하트를 받아냈다.

(그간 고생하셨던 지인들께 다시 사과와 감사를 드립니다.)


매일매일 글을 올려야

그나마 조회수가 나온다는 정보를 뒤늦게 접하고,

비축분도 없이 성급하게 글을 공개해버린

지난날을 후회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쉬지도 못하고

머리를 쥐어짜 내 글을 썼다.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끊어질듯한 조회수를 어떻게든 이어가려면

그나마 성실하게 글을 올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출근해서는 틈틈이 조회수를 확인하고 좌절을 하고

퇴근해서는 되지도 않는 로맨스 줄거리를 짜 글을 쓰던

몇 달간, 스트레스가 빚더미 불듯 불어났다.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심장이 두근거려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지 못했다.


인터넷 소설을 포기하는데 거의 일 년이 걸렸다.

소설을 쓰고 싶은데 인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소설의 소자도 듣고 싶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꿈꿨던

내 집 마련, 인생의 꽃길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내 것이 었던 적이 없었던

넉넉한 상금과 인세가 너무나도 아까웠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나의 뻘짓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되자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다만 이번에는 원칙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쓸 것,

보상을 바라지 않을 것.


쓰고 싶지 않은 주제를 쓴다는 것은

스스로 주는 하기 싫은 숙제일 뿐임을,

보상을 바랄 때 글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음을

지난 뻘짓의 시간 동안 충분히 배웠다.


물론, 아직도 조회수나 라이킷에 기분이 들쑥날쑥한다.

그래도 이제는 나를 다독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고,

조회수와 라이킷은 덤일 뿐이라고.

(물론 조회수를 올려주시는 클릭과 소중한 라이킷,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하나 더 배운 것이 있다면,

워라벨은 엄청나게 중요한 놈이라는 것,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미래의 행복을 위한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 쉼이 있어야 하고,

쉼을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쉬어야 또 다음에 일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다는 것을

센스 있게 알아차리는 것은 쉼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힘든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힘듦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는 행복들을

잘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실로 인소를 포기하고서야

휴일에 가만히 누워있는 행복을 알았고,

코로나로 집에만 있고 난 뒤에서야

바깥세상을 누비는 즐거움을 알았다.


작은 것이 주는 소중함을 알아차려야 함을

로맨스 소설이(덤으로 코로나가!) 가르쳐주었다.


이미지 출처

디자인공간_322, 송영은 (저작물 4011 건), 공유마당,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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