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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설퍼도 꾸준히 May 21. 2020

우울함에 대처하는 방법

우울에 매몰되지 말 것

직장 1년 차, 생 초보 시절.

동료라기보다는 엄마에 가깝다고 느껴지던

상사의 남편분이 돌아가셨다.


갑자기 돌아가신 것은 아니라고 했다.

꽤 오랜 시간 아파하셨고,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길었다고 했다.


장례를 치르고 휴가를 얻어 쉬기로 했던 그분은

어쩐 일인지 휴가를 떠나지 않고 일터로 복귀하셨다.


점심시간,

여쭤볼 것이 있어

식사 중인 그분께 다가가서는

형식적인 한 마디를 건넸다.


"힘드시죠?"


어른의 눈도 이렇게 쉽게 촉촉해질 수 있구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길어도

사별의 슬픔은 불가항력이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신다.


"고마워. 오늘 햄이 나왔는데, 있잖아. 계속 그 생각이 나는 거야.

그 사람이 햄을 좋아했거든.

그런데, 내가 몸에 안 좋다고 안 해줬어.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햄 마음껏 먹게 해 줄걸."


나는 어찌 말을 건네어야 할지 몰랐다.

머리를 짜내어 한 마디 한다.


"좀 쉬시지 그러셨어요. 휴가도 있으시잖아요."

"집에 혼자 있으면 계속 생각이 나. 견딜 수가 없어.

직장에 나오면 그래도 이렇게 말 걸어주는 사람도 있잖아."


그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여전히 내 손을 꼭 쥔 채 말씀하셨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이제는

집에만 있을 수 없다던 그분의 말을

알 것 같다.

그분은 집에서 혼자 있는 그 시간 동안

계속 우울 속으로 침잠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우울은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우울할 때,

안쓰럽고 처량한 자신의 모습에 온 신경을 쏟는다.

세상이 다 이렇게 힘든 걸까.

온몸에 힘이 빠진다.

이대로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지고 싶다.


눈앞이 어둡고 계속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시간들.

우울에 매몰되는 시간이다.




물 먹은 솜처럼 나를 끌어내리는 우울함을 털어내는

비법을 소개할까 한다.

사소한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해가 좋은 날, 남편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선다.

밝은 햇살은 눅눅했던 이불을 보송하게 말리듯

내 마음을 따뜻하고 가볍게 만들어준다.

새파란 하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먼지처럼 남아있는 우울을 조심조심 날려버린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좋아하는 음식이 내 입에 들어오기 전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달콤한 핫초코던,

매콤한 떡볶이던,

나를 기쁘게 해 줄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은

내 영혼을 살찌운다.

(실제로 살을 찌우겠지만 이때만큼은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남편을 가만히 안는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어

그의 심장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말한다.

'내가 여기 있잖아. 괜찮아.'

따뜻한 위로가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우울해하면 남편도 힘들겠지.

이제 그만 우울에서 벗어나야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몹쓸 짓이다.


나의 우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혼자 저 깊은 우울에 매몰되어 있을 때

처량한 내 모습에 집중했다면,

다른 사람과 우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해결책에 집중할 수 있다.


내가 어째서 우울한가,

이 우울을 털어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불쌍함을 부각하고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인 나를 강조하는 대화가 아니라,

내 우울을 다독여주고,

우울에서 벗어날 길을 함께 찾는 대화가 필요하다.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주로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달리기를 하던, 요가를 하던 몸을 쓰고,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던, 영화를 보던 몸을 쉬게 한다.

나는 우울할 때는 요가를 한다.

위로의 말이나 명상이 담긴

가벼운 요가 동영상을 틀어놓고

잠시나마 몸을 풀고 있으면

내 몸도, 마음도 가만가만 위로를 받는다.


일부러 즐거운 루틴을 만든다.

유독 출근하기 싫던 시절,

출근길에 어떤 커피를 마실까를 생각하며 일부러 설렜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출근할 힘이 났다.

남편은 퇴근하고 운동할 생각을 하며 하루를 버틴다고 했다.

어딘가에서 내 에너지를 빼앗긴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에너지를 충전할 구석이 꼭 필요하다.

에너지를 보충할 시간을 만들지 않는다면

나는 머지않아 방전되고 말 것이다.


작년,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전국 방방곡곡을 쏘다녔다.

몸이 힘들어도 주말에 단 둘이 여행을 다녀오면

어떻게든 일주일을 살 힘을 얻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지루한 일상을 환기하는 좋은 방법이다.


코로나로 나들이조차 어려운 지금은

동네 산책과 테이크아웃 카페 맛집 찾기, 요리하기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실패작도 많았지만

수플레 팬케이크 만들기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좋은 추억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었다.




작은 행복을 일상 곳곳에 심어두면

어느새 일상의 행복을 찾는 일이 더 쉬워질 것이다.

숨어있는 행복을 찾아내는 눈이 더 밝아질 것이다.


이 세상에 힘든 일이, 힘든 상황이 없었으면,

힘든 분들이 없었으면 하고

순진한 상상을 해본다.


덧,

이 글이

혹여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는

더 힘든 글이 될까 염려스럽다.

일상에서 겪는 가벼운 우울과

우울증으로서의 우울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우울증을 이기려면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라고

쉽게 건네는 말들이

그들에게 오히려 더 상처가 된다고 한다.

그분들에게 힘이 되지 못함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울증과 함께하는 분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하루가,

모레는 내일보다 조금 더 나은 하루가  찾아오길 바랍니다.




이미지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_2018_남태영_해외_아프리카_남아프리카공화국_0004, 한국저작권위원회 (저작물 35517 건), 공유마당,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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