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설퍼도 꾸준히 Jun 29. 2020

엄마 눈에 나는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다.

매일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우리 엄마

엄마의 부엌 창가에는 언제나 물 한잔이 곱게 올려져 있다.

매일 깨끗한 컵에 반쯤 담겨있는 물을 보며

설거지거리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더랬다.


그 물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아마도

내가 취준 생활 즈음인듯하다.


"엄마, 이게 뭐야?"

"정화수지.

우리 딸들 잘 되라고

엄마가 매일 이 앞에서 비는 거야."


드라마 속 한복 차림의 어머니가

달밤에 장독대 앞에 서서

정성스레 비나이다를 외는 장면에서만

있는줄 알았다.

그 정화수가 우리 집에도 있었다니.

여태 설거지거리라고 정화수를 무심히 지나쳤던

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엄마는 매일 깨끗한 물을 한 컵 떠다 놓고

하늘에 빌고 있었다.

셋이나 되는 자식들의 수많은 문제 중에서

꼭 한 가지 문제를 골라

(두 가지를 고르면 효험이 떨어진단다.)

우리 딸 잘 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고 했다.


엄마의 정화수는 실로 효험이 있었다.

엄마의 딸들은 당신이 빌고 있는 제목대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나갔다.


나는 엄마가 열심히 빌던 대로

좋은 성적으로 원하던 시험에 합격했고,

연봉은 작지만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얻었다.

현재는 천사 같은 남편과 행복한 신혼생활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정화수 후보들 중에

여전히 나는 빠지지 않았다.

엄마 눈에 나는 아직도

어설프고 걱정되는 딸래미일 뿐이다.


집 장만의 꿈만 빼고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나로서는

적잖이 놀라운 일이다.


딸을 셋이나 둔 탓에

엄마의 정화수는 마를 날이 없다.

설령 엄마에게 나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 한들

아마도 엄마는 금세 딸들의 걱정거리를

찾아낼 것이다.


현재 정화수의 목적은 짐작이 간다.

아마도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큰딸의 몫일 것이다.

부디 엄마의 정화수가

이번에도 효험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가 정화수를 뜰 필요가 없는 날이 과연 올까?


글쎄.

엄마 눈에

딸들은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한국기행_문화_여행_음식_풍경_오색영산강_097_정화수, 한국교육방송공사 (저작물 40455 건), 공유마당, CC BY



매거진의 이전글 뻘짓의 역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