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용호 Feb 27. 2020

23. 어제의 내가 물들어.

11월 10일, 여덟째 날

 분주한 소리에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봤다. 무지개 같이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터미널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시간은 8시를 넘어 간지 오래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아까 먹은 자판기 커피, 우유보다 달콤했다. 조금만 더 가면 정읍이다. 저녁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눈 앞에 고속도로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별로 없었다. 의아했지만 사람은 나 혼자 뿐이라고 생각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괭음이 없어 귀도 안 아프고 쭈구리처럼 걸을 필요도 없어 기분이 활짝 폈다. 터널을 보기 전까진.


 멀리서 터널이 보이기 시작했다. 터널에 다 왔을 때 문젯거리도 보였다.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이던 터널의 인도는 내 눈높이보다 높았다. 난감했다. 차들이 별로 없다고 차도로 갈 순 없다. 터널에서 운전자가 예상치 못한 나란 존재에 놀라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방법은 이 위로 올라 걸어가야 하는 것뿐. 이 벽을 넘기로 했다. 통곡의 벽처럼 높은 저 놈을.


 배낭을 멘 상태로 오르기엔 도저히 무리라 배낭을 벗어 위로 던졌다. 그런데 실패했다. 배낭은 내게로 떨어졌다. 안전하게 배낭을 받았지만 몸에 힘이 없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그저 엉덩이를 찌었을 뿐. 그 고통에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소녀가 있었다. 소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소녀는 용감한 소년이 좋다고 했다. 난 곧바로 학교 2층 교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운이 좋았는지 그때도 오늘처럼 엉덩이만 찌었다. 학교에선 난리가 났다. 부모님까지 모시고 와서야 사건은 일단락됐다. 선생님은 나를 죽일 듯이 혼내고 학교 예산으로 창문에 철창을 박았다. 그 예산은 선생님들 해외여행비였다. 그래서 선생님의 매질에서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도 돈을 정직하게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회상으로 엉덩이를 툴툴 털고 일어났다. 다시 침착하게 배낭을 던졌다. 안전하게 착지했다. 내 몸은 한 번에 실수 없이 올랐다. 위에서 도로를 봤다. 만일 다리에 힘 빠져 떨어지면 이번만큼은 엉덩이를 넘어 전신이 아작 날 거 같았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정강이에 힘을 빡 주었다.


 생각보다 터널은 길었다. 이때쯤 이면 입구가 나올 타이밍인데 끝은 보이지 않았다. 터널이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인도가 넓어졌다. 그곳에서 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명작이 탄생하겠다. 배낭을 내려놓고 신나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모델처럼 폼도 잡아보고 기이한 몸부림도 쳐보고 점프샷까지 찍었다. 나의 열정에 땀이 났다. 한참을 찍고 나서야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사진을 확인했다.


 “어? 뭐야. 이거.”


 예상치 못한 게 사진에 있었다. 안전을 감시하는 CCTV. 나를 쏘아지게 보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누가 이런 내 꼬락서니를 라이브로 본 걸까? 아니다. 설마 이 시간에 누가 보고 있겠어.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맴돌았지만 나만의 긍정적 마인드로 이를 잠재웠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해 터널을 빠져나왔다.


 변함없는 경치를 즐기며 고속도로를 걸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사람 하나가 보였다. 설마 나와 같은 여행자일까? 하지만 그의 몸은 짐 하나 없이 가벼워 보였다. 중년의 남성. 작업 복장을 입은 그는 담배를 쪽 쪽 피우며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이리와 요.”

 “네?”

 “커피나 한잔 하고 가세요.”

 “어디서요?”


 아저씨는 옆을 가리켰다. 국립 건물처럼 딱딱하고 깔끔한 건물과 주차된 자동차들, 그리고 견인차가 보였다. 도로교통부였다. 아저씨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유행을 타지 않는 인테리어는 1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느낌을 줄 거 같았다.


 “여기 앉으세요.”

 “감사합니…… 어?”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수많은 CCTV 영상이 실시간으로 라이브 되고 있었고 그중에 낯설지 않은 장소가 보였다. 내 열정을 태웠던 그 터널. 아저씨는 내가 CCTV에서 생쇼를 하는 모습을 보고 여기로 올 줄 알았던 거였다. 아저씨는 내게 믹스 커피를 타다 줬다. 양과 질의 완성인 더블샷으로.



 “부럽네. 이런 것도 하시고. 나도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삶이.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걸 싶네요. 하하.”


 대화를 하면서 내 앞에는 커피보다 이빨이 시릴 정도로 시원한 500ml 맥주잔이 더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다. 아저씨는 나를 보며 젊음을 회상하고 지금을 회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포기한다는 건 무언가를 위해서 내려놓는 건데 아저씨의 말에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많이 거론됐다. 그 무언가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어떤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듣기만 했다. 지금의 나는 무슨 말을 하든 아저씨에게 생각의 전환이 아닌 심심한 위로의 말이 될 테니까. 커피의 빈 잔을 쓰레기통에서 휙 날리고 다시 걸었다.


 마침내 정읍에 도착했다. 들개 무리를 만났던 일, 산속에서 봉고차한테 쫓겼던 일, 진돗개의 먹잇감이 된 일들은 한 겨울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정읍 종합경기장에선 내가 왔다는 걸 반겨주는 듯 축제를 하고 있었다. 구경하다 가고 싶었지만 몸의 과부하로 인해 바로 찜질방에 갔다. 찜질방 사장은 나를 유심히 보더니 보관함 키를 하나 더 줬다. 제 빨리 샤워를 하고 찜질방 한 구석에 누웠다. 내 옆으로 러시아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지만 귀마저 지쳤는지 금방 소음에 익숙해졌다. 빨리 자자. 너무 피곤하다. 그때 전화가 왔다.


 “누나? 웬일이냐. 네가 다 전화를 하고.”

 “어디냐?”

 “정읍.”

 “아니, 어디서 자냐고 등신아.”

 “텐트 치고 자려고 했는데 문제가 있어서 찜질방에서 자려고. 지금 찜질방이야.”

 “뭐?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그 딴 데에서 왜 자 멍청아. 차라리 모텔을 가!”

 “모텔은 무슨, 돈이 남아도냐? 아 시끄러워! 나 밤새고 걸어서 피곤해. 잔다.”


 끊고 바로 눈을 감았다. 핸드폰에서 한동안 이어질 거 같은 진동이 느껴졌지만 내 졸음은 그것을 뛰어넘어 영원할 거 같았다. 눈을 떴을 때 새하얀 병실에서 깨어나도 그럴 줄 알았다며 가가대소할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22. 아침인 듯 아닌 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