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옹 Aug 10. 2018

여행수필 23 - 삿포로 여행, 욕조에서 잠 들 뻔하다

너와 내가 똑같다면 함께 할 이유가 있을까?

심옹의 여행수필 23편


1박 2일 혹은 2박 3일에서 '박'(泊)이라는 단어는 객지에서 묵는 밤의 횟수를 세는 단위이다. 이 말 속에는 단순히 객지에서 몇 밤을 묵느냐라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도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늘 머물던 집을 떠나 객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새로운 공간에 대한 설렘과 기대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20년 지기 후배한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후 배 : “형, 다음 주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3~4일 정도 시간이 남아요. 어디 가까운 해외로 여행갈 곳 없나요?”

   나 : “흠, 일본 어떠니? 너 일본을 한 번도 안 가봤잖아. 너한테도 좋을 것 같고. 

         그리고 가게 되면 삿포로가 좋을 것 같고. 도쿄나 오사카도 좋지만 조금은 특별한 곳으로 가자.” 


강산이 두번이나 바뀔 시간동안 알고 지내면서도 단 한 번도 그 후배와 둘이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불혹의 나이에 우리는 그렇게 함께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혼기를 한참 놓친 노총각 둘이서 떠나는 여행이 뭐가 그리 즐거울까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역시 여행인가보다. 2박 3일 동안 삿포로와 오타루의 유명한 관광지도 방문하고, 맛집에서 밥도 먹고, 그동안 미뤘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 기억 속에는 특별했던 여행 중의 하나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그 특별함에는 조금의 감내도 포함되어 있다.


대학 때부터였던 것 같다. 1박 2일 여행을 가게 되면 선후배와 같은 방을 쓰게 될 경우 늘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로, 내가 누운 자리 주변에 코를 고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까마득한 선배들과 MT를 갔을 때는 복불복으로 생각하고 아무 말 못했지만, 내가 막상 선배가 되었을 때는 아예 코 고는 사람들, 그리고 코를 안 고는 사람들로 분류해서 방을 배분했었다. 그럴 때마다 타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자기는 절대 코 안 곤다며 버티는 후배들도 꼭 한 둘은 있었다.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즈음 삿포로에 도착했다. 2박 3일의 여정이었기에 호텔에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었다. 간단히 호텔에 여장을 풀고는 곧바로 시내관광에 나섰다. 삿포로 시내 관광은 그리 많은 시간을 요하지는 않는다. 3~4시간이면 충분히 중심지의 유명 관광지를 돌아 볼 수 있어 처음 일본을 찾은 여행객들은 짧은 시간 안에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도보로 3~4시간을 걸어 다니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보고자하는 마음에 조금은 힘들게 스케줄을 만들었다. 이럴 경우, 여행 중 다툼이 한번 일어날 법도 하지만 아무런 불평 없이 내가 짠 스케줄대로 즐겁게 따라주는 후배가 고맙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삿포로 JR타워에 올라 밤늦게까지 야경을 보고 드디어 호텔로 돌아와 휴식과 더불어 내일을 위한 잠을 청했다.


새벽 1시쯤 되었을까? 요란한 코고는 소리에 잠이 깼다. 2인용 좁은 침대, 바로 내 옆에서 후배가 100dB(데시벨)에 육박하는 소음으로 내 수면을 방해하고 있었다. (참고로, 100dB는 기차가 지나갈 때의 소음 정도이다.) 

이불과 베개로 머리를 감쌌지만 소음과 더불어 진동까지 느껴진다. 감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잠시 흔들어 깨우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이내 다시 잠들어버리는 후배는 결코 멈출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할까? 그냥 무시하고 잠들 수는 없는 것일까? 방에 왜 소파는 또 없는 것일까? 바닥에서 잘까? 하지만, 바닥이 아무리 카페트라고 해도 잠자는 내내 바닥에서 올라오는 먼지를 흡입할 것만 같아! 안 돼!”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후배의 코고는 소리를 이겨낼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나지 않는다. 그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한다. 그때 불현듯이 스치는 생각.


“그래, 욕조는 어떨까? 욕조에 누워서 화장실 문을 닫으면 조용할 거야.”


하지만 욕조에 불편하게 몸을 구긴 채 잠든 나의 모습을 남은 인생 동안 반추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일단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온화한 모습으로 코를 골며 자는 후배를 보며 조금이라도 멀어지고픈 마음에 침대 끝으로 꼼지락 꼼지락 몸을 뻗었다. 조금씩 멀어지는 코 고는 소리. 난 결국 후배와 반대 방향으로 누웠다. 후배의 발이 내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베개로 귀를 덮었다. 신기하게도 멀어지며 작게 들리는 후배의 코 고는 소리. 이 정도면 견딜 만 했다. 스르르 나도 모르게 비로소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와 후배는 같은 침대에서 다른 방향으로 수면을 취했다. 이튿날 아침, 후배가 먼저 물어본다.


후 배 : "형, 어젯밤에 저 코골지 않던가요?

   나 : “무지 골았지. 하마터면 욕조에 가서 잘 뻔 했어.”

후 배 : “그 정도였나요? 미안해요. 하하.”

   나 : “아니야, 방법을 찾았어. 거꾸로 자니까 견딜 만 하더라고. 하하”

후 배 : “......”


내게 있어서 여행은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여행은 바깥 세상에 대한 나의 작은 도전이자 미지의 세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평소에는 잘 알 수 없었던 나 자신 혹은 동행하는 사람의 여러 가지 습관과 생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습관이 좋던 안 좋던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지 않는 개개인의 개성과 특징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나 자신 뿐 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 갖는 또 다른 묘미다. 


떠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떠나면 비로소 감춰져있던 것들이 드러난다. 나와 네가, 세상의 다른 어떤 곳에서 스스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면 떠날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심옹의 여행수필 24편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수필 22 - 삽시도 물망터 뜻하지않은 암벽등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