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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옹 Sep 23. 2018

여행수필 35 - 라스베가스 카지노에 없는 3가지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 중에 가장 위험한 것

심옹의 여행수필 35편


도박과 나는 거리가 멀다. 남들 흔하게 하는 고스톱도 아직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살다보니 관광과 도박의 도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라스베가스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 라스베가스에 가면 도박을 좋아하던 싫어하든 어김없이 카지노를 접하게 된다. 카지노에는 통상적으로 3개가 없다고 한다. 시계, 창문 그리고 거울.


도박을 하다가 시계를 보면 얼마나 자기가 도박에 열중했는지 알 수 있으니 시간의 흐름을 아예 모르게 도박장내에는 시계를 별도로 걸어놓지 않는다. 또한 밤이 되었는지 낮이 되었는지 파악할 수 없도록 창문도 설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시간 혹은 밤새도록 도박을 한 초췌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성을 하고 도박을 멈출까봐 거울도 두지 않는다. 카지노는 모든 손님들이 도박에만 열중하도록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안 그런 곳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그런 것 같다.


10여명의 일행들과 함께 1박 2일로 방문한 라스베가스. 과연 환락의 도시라고 일컬어질 만큼 밤낮으로 모든 거리와 건물은 휘황찬란했다. 낮에는 라스베가스 거리를 걸으며 길거리 공연도 보고, 멋진 호텔 건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일행들과 함께 자유롭게 거리를 누볐다. 밤이 되고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야외무료공연을 보고 늦은 밤 숙소로 돌아왔다.  


다른 곳을 여행했다면 휴식과 취침을 했을 테지만, 여기는 라스베가스다. 밤이 더 화려한 곳. 대부분의 일행은 호텔카지노로 가서 나름의 취향에 맞게 시간을 보냈다. 블랙잭이나 포커를 하는 사람들, 주사위 던지기를 하는 사람들, 슬롯머신을 하는 사람들. 나도 재미로 20불정도만 슬롯머신을 하기로 했다. 제법 오래 할 생각으로 1센트짜리로 선택을 하고 10불 정도를 썼을까? 동전이 왕창 쏟아진다. 그래봐야 30불 정도였지만. 그리고는 그만 뒀다. 나는 남들이 이야기하는 새가슴이라 조금이라도 벌었으면 그만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도박에서 필요한 과감성 혹은 배짱이 내게는 없음을 진작 알고 있었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방으로 올라가 쉬려고 하는데 근처에서 슬롯머신을 하고 있는 일행 중 한명이 눈에 띈다.


      나 : 이제 그만 올라가서 쉬시죠?

일행 A : 아, 네. 30분만 더 하고 갈게요. 먼저 쉬세요.

      나 : 네, 그럼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호텔로비로 내려오는데 카지노 객장을 지나면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헤어졌던 일행 중 한명이 어제 본 그 모습 그대로 슬롯머신에 열중하고 있었다. 퀭한 눈과 부스스한 머릿결, 나를 보며 멋쩍게 웃는 미소 속에는 밤을 센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나 : 아니, 아직 하고 계세요? 밤새도록 하신 거예요?

일행 A : 네, 어쩌다보니.

      나 : 이제 그만하고 식사하러가요.


밤새도록 몇 백 만원을 잃었나보다. 귀국 선물을 사러 가지고 온 돈은 물론이고 객장에 설치된 현금인출기로 뽑은 돈까지 모두 잃었을 것이다. 나까지도 그 모습을 본 순간 밀려오는 허무감에 마음이 참 공허해진다.  


여행이 주가 아니라 객이 되는 순간, 여행의 즐거움과 감동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라스베가스 혹은 마카오처럼 카지노를 하나의 도시산업으로 기반을 삼는 곳에는 카지노가 여행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카지노가 주가 되는 그 선을 넘어 버리면 여행자들에게 그 곳은 더 이상 좋은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가슴 쓰린 순간과 고통을 안겨준 곳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즐거움과 경험을 찾는 여행을 하는 자들에게 분명한 목적의식과 절제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때로는 여행에도 그러한 것들이 필요할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각자의 판단에 따른 개인의 몫일 것이다.


심옹의 여행수필 36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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