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거창했던 시작
사실 UX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2016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맘때쯤에 슬슬 우리나라에도 UX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퍼지고 있었고, 인기를 한창 끌기 시작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 때, UX를 알게 되었고 단숨에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아 내가 찾던걸 UX라고 부르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릴때 부터 여러 예술 분야에, 고등학생 때는 예술과 IT에 관심이 많았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을 모아둔 학교에서, 친구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좋은 대학과 직업을 가질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는 연극부 활동과 미학동아리, 독서에 심취해 있었고 자습 시간엔 공부도 했지만 자주 책을 읽거나 잠을 잘 때도 있었다. 2009년? 2010년? 아이폰이 대세로 떠오를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매일 아침 각 반에 조/중/동/한겨례/경향/코리아 헤럴드가 배송되었었는데, 어느날 내가 아침밥을 먹고 호외요 호외! 하는 영화속 신문 배달부 아이처럼 그 중에 하나를 들고 교실에 뛰어들어갔다. "얘들아 스마트폰에는 '앱'이라는게 있는데, 그걸로 여러가지를 다 할 수 있대! 어떤 알람 앱은 내가 뒤척이는 소리를 감지해서, 제일 잠에서 깨기 쉬운 뇌파일때 깨워준대!" 라고 단상 근처에서 외쳤다. 그때 누군지 기억은 안 나는 어떤 친구가 "근데 나는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고 싶으면 어떻게 해?" 라고 했고, 나는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어? 그럼.. 안쓰면 되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물론 그 기능이 필요한 사람은 그 앱을 쓰고, 아닌 사람은 안 쓰면 된다. 하지만 그 질문은 처음으로 나에게 '만들 수 있어서 만드는 것이 일으키는 문제'와, '사람들의 문제(things to solve)'라는 IT업계의 중요한 핵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IT업계에서 만나본 많은 회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문제'와 그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하지만 또 어떤 수많은 회사는 그저 만들 수 있으니까 (기술이 있으니까) 만든다. 팔릴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기술은 좋고 번지르르 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그 순간을 맛보고 대학에 가서, 우여곡절 끝에 디자인과에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문화(공연) 기획자가 꿈이었다가, 그런 축제나 공연들에는 이미 행복한 (살만한)사람들이 오는 것 같아- 라는 생각으로 진로에 대한 방황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수강 신청에 망해서 우연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라는 강의를 듣고,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을 알게되었는데,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그 해결책이 경제적인 수익을 만들어내서 자생할 수 있다는게 너무, 너무나 획기적으로 느껴졌다. 관련 활동을 찾아보다가, 소셜벤처랩이라는 수업을 찾은 것이다! 그 곳에서 IT업계와, 창업,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개념을 전체적으로 배웠고, 나의 문제에서 시작한 어떠한 '문제'를 정의해서, 그거와 관련된 캡스톤 프로젝트를 간단하게 팀을 이루어 진행해야 했다. 너무 재밌고 배운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마침 그 수업을 진행했던 헤드플로우에서는, 아예 풀타임으로 비슷한 대안대학 커리큘럼을 진행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바로 내 인생의 한 변곡점이 된 '오픈유니브' 였다.
오픈유니브에서는, 지원서와 무려 면접까지 봐서 사람들을 한.. 열 몇명 정도를 뽑았던 것 같다. 월화수목 방배역에 있는 유니브 건물로 가서, 나의 문제에서 시작한 아이디어, 또는 세상의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소프트웨어로 해결할 수 있도록 코딩, 디자인 씽킹, 또 IT적 사고(라고 이름 붙여본다)를 배울 수 있는 너무너무나 양질의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마치고 거기서 같이 음식도 해먹고, 소소한 파티도 열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도 불렀다.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수업은 디자인 씽킹 수업이었다.
Empathize 단계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생각해보며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 과정을 스벤이라는 UX 디자이너 (당시는 홍대 디자인과 교수님으로 일하고 계셨다) 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유저 인터뷰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문제를 좁혀나가고, 솔루션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는 너무너무 재밌었다! 그 무렵 이 수업과 유니브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런게 UX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때 깨달았다. 내가 항상 생각했던 인간-예술-기술의 접점을 고민하는 분야를 UX 라고 하는구나! 이런 분야가 이미 있었구나, 라는 것을. 유니브 친구들 중에 UX를 하던 한 친구가 있어서, 그때 그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너가 하고 싶은건 UX네!'라고 꼭 짚어서 말해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UX는 내가 어릴때부터 생각했던 인간-예술-기술의 교차점에 있는 것이기도 했고, 본질적으로 사람이 어떤 '문제'를 가장 쉽고 편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분야이기도 했다. UX 디자이너가 된 지금, 가끔은 더 매출을 많이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힐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항상 이 질문을 가장 많이 생각하고 말한다.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을까요?
어떤 도메인에 있더라도,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더라도 그 집단의 UX 디자이너는 이 부분을 고민한다. 지금은 유저(사용자)라고 많이 부르는 그 사람들의 어떤 문제, 그것에 집중하고, 그 솔루션을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이다. 회사의 그 어떤 사람들 보다도 이 부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바로 UX 디자이너 이고, 그래서 많은 우연과 시도 끝에 찾은 이 직업에 대해 많은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일하고 있다. (물론 엄청 힘들때도 많다..)
그리고...직업이 잘 맞는 것도 UX 디자이너가 된 이유에서 한 몫을 한다. 학생 때, 그리고 개인 프로젝트로 트레이닝을 할때와 달리 직접 일 하면서 느낀바로, UX 디자이너는 올바르게 사용자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는 (때로는 자연스러운 인지 방법을 읽고 미리 유도하는) 종합적인 논리력, 그리고 수많은 같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최대한 '사람들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정말 제일 중요하다. 이 두가지는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어느정도 자신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잘 맞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하고.. UX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한 글은 추후에 따로 써보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오늘도 힘들지만 즐겁게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