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테마방의 추억(모르는게 약?)
출장 가서 모텔에서 자도 괜찮겠냐고
걱정하는 선배들에게
다들 그렇게 하는데, 유난 안 떨 테니 걱정 말라던
철없는 신입은 고작 2주 만에 백기를 들었습니다.
모텔에 대실이 있다는 건 알았어도,
연박하는 객실까지도 대실을 하는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나의 첫 팀장님은 어렵게 얻은 막둥이인 마냥, 정말 나를 애지중지 하셨다.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촉망받는 인재로 키워낼까 다양한 고민과 시도로 OJT를 해주셨다. 입사 후 8개월이 지나서였을까. 바람 좀 쐬며 걷자던 팀장님은 심란하셨던지 빌딩을 두 바퀴나 돌고 나서야 갑자기 부서 이동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동해야 한다고, 본인은 너무나 아쉽고 속이 상하지만 너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동한 팀은 TFT(Task Force Team)였다. 일은 생소했고, 신입에게 어울리는 자리인가 고민은 됐지만 팀장님께서 좋은 기회라고 한 이유는 있었다. 경영진단에서 취약하다고 결론 내린 항목들의 개선안을 찾아내는 임시 조직이었기 때문에, 성과만 낸다면 확실하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조직도 새롭게 세팅될 예정이었고, 회사 차원의 새로운 규정과 절차를 구축하고 운영까지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던 것이다. 해체되면 멤버들이 모두 소속 조직으로 복귀할 임시조직이었기 때문에, 새롭게 세팅될 조직에 남아서 TFT가 찾아낸 개선안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인간 인수인계서가 되는 게 나의 미션인 듯했다.
신입에게는 난이도가 높은 업무였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회사의 프로세스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고, 작은 부분이지만 혼자 맡아서 개선안도 찾아내며 프로젝트를 잘 마감했다. 아마 신입이라 선배들의 기대치도 낮았던지, 관심과 격려를 듬뿍 받았다. 배울 점이 많은 좋은 선배를 만나고, 그런 선배에게 인정도 받았다.
복병은 난이도 높은 업무가 아니라 다른데 있었다. 프로젝트의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제조 현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고, 관련 부서들이 모두 공장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4개월 이상을 4주 중에 3주 이상 출장을 갔다. 회사에는 국내 메인 공장이 두 곳 있었고, 일주일 중 사흘은 A공장 이틀은 B공장, 또는 반대인 식으로 일주일 내내 집 밖에서 잠을 자던 나날이었다. 처음 출장을 준비하는데, 선배들이 모텔에서 자도 괜찮겠냐고 걱정을 해주셨다. 규정은 3성급 이하 호텔에 묵을 수 있었고, 암묵적인 룰은 인당 숙박비 6만원 이하라고 했다. 당시엔 공장들이 많이 몰려있어서 출장자들이 많은 지역임에도 비즈니스호텔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모텔을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다들 그렇게 하는데 (여자라고) 유난 떨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시라 호언장담을 했다.
그런데 막상 출장이 시작되자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지역마다 출장자 대상으로 연박이 가능한 모텔 리스트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배들이 짐을 맡아준다고 표현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당연히 호텔처럼 연박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 거기다 나는 호텔이던 펜션이던 내 짐을 풀어두지 않고 외출 시에 캐리어에 다시 정리해서 잠가두는 편이라, 짐을 맡아준다는 말의 의미를 더 늦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며칠간의 출장 동안 눈치로 알게 된 것은 짐을 맡아주는 것이 내 방을 비워두는 게 아니라 짐을 빼서 보관해주고, 대실을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었다. 아,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설명하자면, 보통은 퇴근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8시 전에는 숙소로 복귀를 하는데, 복귀를 하지 않고 술자리가 길어진다 싶으면 모텔에서 시간마다 일행이 언제 숙소에 들어오냐고 전화를 해댔다. 그래도 나는 이걸 왜 물어보냐고 선배들에게 푸념만 했지,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아마 선배들은 알면서도 나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던 걸까. 나중에 정말 몇 년이 지나서 누군가에게 그 얘기를 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대실을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을 듣고야 무릎을 탁 쳤다.
어느 날엔가는 한 모텔에 예약 전화를 해서 방 4개에 여자도 1명 있다고 하니, 여직원이 이런 모텔에 묵기 얼마나 불편하냐며 방을 업그레이드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모텔에도 방 그레이드가 있나 싶었지만, 일단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체크인하고 들어가 본 방에는 한쪽 벽면에 실내 클라이밍용 홀드가 가득 설치되어있었다. 나는 도대체 이런 게 왜 있나 싶어서 네이버에 검색까지 해봤다. 그런 것이 ‘테마방’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 출장엔 철창살이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테마방은 가격도 비싸고, 수도 적기 때문에 대실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밤에 들어가 보면 시트가 엉망이었다. 한두 번 그런 경험을 한 이후로는 겉 이불을 걷어보지도 않았다. 베드 스카프를 세로로 깔아서 그 위에 누워 입고 간 코트를 덮고 자기를 반복했다. 업그레이드가 이런 거라면 필요하지 않았는데, 마치 호의처럼 업그레이드라고 하더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3주 차가 되어서 결국 나는 백기를 들었다. 모텔에 묵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택에 출장자용 방이 하나 생긴 지역도 있었고, 어렵게 비즈니스 호텔을 찾아 6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은 내가 사비로 결제해 가며 출장을 다니기도 했다. 당시엔 답도 없는 문제에 투정 부리는 것 같아 말도 못 했던 이야기를, 이제는 술 한잔 기울이며 테마방에서 잤던 일을 훈장처럼 얘기하게 됐다.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다 보니 당시 남자 선배들 중에도 예민한 분들도 있었고, 모텔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어느새 도시마다 신라스테이 같은 캐주얼한 호텔도 늘어나고, 남자 선배들도 모텔이 싫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면서 금액도 지역별 호텔 수준에 맞춰 사용하도록 바뀌어 가고 있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가는데, 잠은 편히 자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출장 다니는 친구들은 이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은 경험을 할 일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조금씩 무어라도 나아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