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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애 Feb 02. 2023

왜 이렇게 춥게 하고 다녀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엄마~ 축구 유니폼 왔어! 학원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가 보조가방에서 유니폼을 보여주었다. 오, 드디어 받았네? 집에 가서 바로 입어보자. 아이는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가방과 외투를 훌렁 벗고 유니폼을 꺼냈다. 상표 떼지 말고 우선 입어보자. 아, 아니다 이미 이름이랑 번호가 새겨져서 반품할 수가 없네? 앞, 뒤 대강 훑어보고 택을 가위로 잘랐다. 내일 이거 입고 갈래! 내일? 내일은 축구가 없는 날인데. 축구하는 날에 입는 게 낫지 않을까?




왜냐면 축구 없는 날에 축구 유니폼을 입고
가면 유니폼 자랑하려고 입고 왔구나, 친구들이 생각할 거 아냐. 근데 축구하는 날에 입고 가면 똑같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축구 수업 때문에 입고 왔구나 싶을 거 아냐.




아이에게 이런 식의 비유를 들어 말한 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너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타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좋게 좋게 해석하고 넘기고 둥글게 둥글게 지내길 바라 서다. 스스로 괜찮다 믿는 마음이 단단해서 자아존중감이 높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의 자기 확신이 강해지고 확신은 고집이 되어 엄마와 좋게 좋게 풀어가는 일부터 되지 않기 시작했다.




그거 여름옷이야. 괜찮아, 하나도 안 추워. 너는 안 춥겠지만 니 몸이 춥다고 아우성 칠 거라고~ 하루 축구하고 일주일 축구 안 하고 싶어? 괜찮아~ 괜찮다고~~! 이런 실랑이를 분초를 다투어도 모자랄 평일 아침에 하다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가야 돼~! 엄마 때문에 이상한 옷 입고 가잖아~ 안에 긴팔 입고!!




잘 생각해 봐. 만일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에 한 여름 반팔을 입고 네가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걱정하지 않으실까? 아.. OO가 옷을 저렇게 입으면 감기에 걸릴 텐데. 엄마는 아이가 춥게 입고 나가도록 한 건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몰라. 그리고 또 생각해 봐. 축구 클럽 형들이 정말로 여름 반팔을 입고 학교에서 지낸다고? 지금 봐봐. 사람들이 어떻게 옷 입었는지 말이야. 아이는 긴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아 맞다 맞아. 형들도 잠바 입고 온다. 그치? 그래, 대신에 안에 긴팔티 내리고 축구할 때 너무 더우면 벗고 해. 긴 회색티를 입고 겉에 반팔 축구티를 입게 했는데 그게 영 못마땅해서 엄마 때문에 이상하게 옷을 입고 간다며 딴죽을 걸었기에 덧붙인 말이었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살아왔다. 남편을 만나서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깨달아간다. 가령 아이를 아기띠로 안아서 마트로 가는 길에 “왜 이렇게 춥게 입혔어? 양말을 신겨야지.” 하는 말을 과거의 엄마들은 한 번씩 들었을 테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다) 어른들이 내뱉은 말에 상처받는 젊은 엄마들이 있었는데. 나는 상처는 둘째치고 그런 말을 들으면 미간에 인상이 찌푸려지고 눈썹이 올라갔다. 애는 내가 키우는데! 애 성향을 내가 아는데!! 짜증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춥게 입고 다니냐는 말을 아이가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까. 건강이 염려되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그토록 거북했던 지적을 내가 아이에게 하고 있다니. 그런 말을 다른 어른에게 들으면 아이가 의기소침해질까 봐?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평가하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행동을 평가하고 깎아내려온 건 다름 아닌 엄마였다. 엄마라서 괜찮을 리 없는데. 왜 여태 몰랐지..




다른 이들이 아이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자유다. 남이 평가하는 나는 10점 만점에 7점일 수도 있고 실격일 수도 있지만 나라는 심사위원에게는 10점이라며 스스로에게 만점을 준 <알쓸인잡> 속 심채경 박사처럼. 남들이 나의 아이를 어떻게 평가하든 말든 엄마는 자녀를 10점 만점에 10점, 가산점까지 팍팍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 겨울에도 반팔 입고 축구하러 가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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