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과로백수 Feb 22. 2022

아, 나는 정말 꼰대가 되었구나

인터넷 강좌를 듣던 어느 밤 이야기

노트북 화면에서 '기초 일본어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나이가 많아 보입니다


가르마 없이 왁스를 발라 밤톨처럼 세운 머리와 높은 확률로 화장을 했음에 틀림이 없어 보이는 분칠  듯한 하얀 피부, 진한 네이비 색상의 셔츠에 같은  도트가 찍힌 하얀 넥타이 등으로 명동이나 을지로에 가면 흔하게 만날 30 직장인 같은 스타일을 연출하고 있지만... 그는 나이가 많아 보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그 사람의 '나이 많음'을 제가 이렇게 확신하게 되는 건, 조명이나 화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처진 눈매 같은 외모나 그가 자랑하는 그의 화려하고 긴 이력 때문이 아니라... 그의 '반말' 때문입니다.


그는 반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구사합니다.

강의 시작과 중간중간에 존댓말이 없지는 않으나, 단어를 설명하거나 예문을 따라 읽기를 청하는 순간에서는 언제나

'따라 해 봐', '그런 거야', '쉽잖아' 등의 반말이 끊이질 않고 이어져요.


그리고 저는,

그의 '반말'이 몹시도 불편합니다.


사적인 친분의 자리에서 모두가 양해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개인이 불특정 다수(심지어 누구인지도 모르는)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라면, 전 ‘존대어'를 써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1명보다는 다수가 더 중요하다'는 식의 '수적 우위 개념'에 근거하거나, ‘말하는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의 '경로우대적 개념'에 근거한 것이 아닌,  ‘우리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상호평등적 개념'에 근거한 생각이랄까요.


그러니까 제 관점에서 '강사가 존댓말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성/연령별 특성이 어떠하건 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나와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상호존중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일 것 같거든요.


물론, 이런 '상호존중의 마음'은 청중이 강사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적용되어야 하고, 어느 쪽에도 '강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존댓말로 설명하는 젊은 강사에게 반말로 이야기하는 어르신 청중이나, 어르신 강사에게 우리가 돈 내고 만든 자리니 존댓말 하라고 강제하는 유치원생들을 생각해보면요..)


강사와 청중 간에 최소한의 아이컨택을 비롯한 어떠한 상호교류도 일어날 수 없고, 강의를 듣는 사람의 성연령 별 특성도 특정할 수 없는 인터넷 강의에서, 그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구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렇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던져도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어도 내가 어디에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많다'는 자기 확신이 있는 건지, ‘선생과 제자'라는 관계를 위계질서로 인식하고 있는 건지,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친근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도대체 그는 왜 저렇게 쉽게 반말을 구사하는 것일까요?...

 

등등의 생각을 하며

반말을 하는 그의 '강의 태도'에 대한 불쾌함으로 씩씩대다가. 상대방의 '태도'나 '예의'를 따져대는 내 모습에 소스라치는 밤입니다ㅋ


라떼는 쌍화차에 노른자 띄워서 먹고 막 그랬는데 말이죠 ^^’



작가의 이전글 민폐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