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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Aug 31. 2021

숨 막히는 육아

  오른쪽 손목에 염증이 있다. 명칭은 건초염이고, 손목을 구부리거나 손가락을 움직일 때 극심한 통증이 발생한다. 대학시절 어느 순간에 발생했던 이 염증은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회사생활 중에도 야근을 좀 많이 했다 싶으면 손목이 아파오곤 했다. 한 번 취약해진 몸의 한 부분은 피로와 스트레스에 쉽게 반응했다.


  이주 전이었다. 집에서 처방받아온 약이 든 약봉투를 식탁에 올려두고 가만히 보았다. 약봉투에는 내가 먹을 약이 어떤 것인지 사진과 함께 설명이 적혀있었다.


자나팜정 0.125mg [수면진정제 및 신경안정제]

인데놀정 10mg [ β차단제]


나는 5년 전에 공황장애를 겪었다. 정상적인 호흡이 어려워서 먹는 것도 대화하는 것도 어려웠다. ‘자나팜’과 ‘인데놀’은 그때 먹었던 약이었다.

 

 한번 취약해진 몸의 한 부분은 힘든 상황에 쉽게 타격을 받았다. 약을 먹고, 휴직을 하고, 회복기를 거친 후에 나는 다시 일상으로 왔다. 하지만 회사에서 야근이 이어지면, 업무 압박이 증가하면 나도 모르는 새 숨을 몰아쉬며 대화하고 있었다. 오른쪽 손목의 건초염처럼 공황 증상 역시 내 몸의 취약한 한 부분으로 내 인생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재작년 11월에 출산을 하면서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아이를 안느라 자주 썼던 손목은 이따금씩 건초염이 왔다 가곤 했다. 다행히 육아 중에 공황 증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제와 보니,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던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던 날들이 분명 중간중간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봄부터 ‘코로나19’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일 년 뒤면 끝날 줄 알았던 전염병 확산이 일 년 뒤 여름이 지나가는 8월 말이 되도록 여전하다. 아직까지도 정부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 간 만남을 제한하고 있고,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남편네 회사는 2주에 3 꼴로 재택을 하더니, 코로나 거리두기 방침이 4단계로 격상된 뒤로는 2주에 3일꼴로 회사를 가고 있다. 재택근무를 위해 안방에 남는 공간에 책상과 모니터를 들이고, 사무용 의자도 새로 사서 홈오피스 공간을 만들었다. 신랑이   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회의 소리가 곳곳에 울렸고,  번씩 ‘끼익하는 스피커의 불협화음, ‘띠링하는 메신저 알람 소리도 들렸다. 코로나 4단계 격상 이후 우리  낮의 모습은 이러했다.


  언제부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이 유독 힘에 부쳤다. 두세 발자국 걷다가 멈춰 서서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기를 반복했다. 그때는 더운 날씨에 내 체력이 견디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부엌일을 할 때도, 거실 소파에 가서 앉아도 기계 소리 묻은 남편 업무 소리가 끊기지 않고 들렸다. TV를 켜도 그 소리는 감춰지지 않았다. 어느 곳도 편하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며칠째 회복되지 않은 체력이 돌아오기만을 바랬다.

 

 점심메뉴 걱정을 하는 나 대신 남편이 나서서 라면을 끓인 날이었다. 나는 라면을 삼킬 수 없었다. 꾸역꾸역 씹어서 삼킬 때 숨이 막혀서 식은땀이 났다. 그 순간 깨달았다. 공황장애가 다시 찾아왔구나.


  그 뒤로 나는 병원에 가지 않고, 스스로 증상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해봤다. 최대한 휴식을 취하며 몸을 이완시키려고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이를 재운 뒤 나도 바로 따라 잠들었다. 사실 몸동작 하나하나에 숨이 딸려서 휴식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면, 나는 제대로 서서 걷지도 못하고 숨을 몰아쉬며 아이를 쫓아다녔다. 쉽게 피로해지는 만큼 쉽게 짜증도 났다. 이렇게 육아를 지속할 수 없었다. 결국 주말을 지나 보낸 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공황 증상이라 했고, 처방전을 내주었다. 약국에 처방전을 내고 내 순서를 기다렸다. 약사가 내 이름을 호명하고, 내가 다가가자 먹어본 적 있는 약인지 물었다. 나는 5년 전에 먹었던 약이라고 대답했다. 약사는 간략한 설명과 함께 약을 내주었다. 집으로 와 약봉투를 식탁 위에 두고 처방받은 약을 확인했다. ‘자나팜’과 ‘인데놀’. 비상시 먹는 공황 약이다. 오후 육아는 숨통이 트이길 바라며 알약을 삼켰다. 그리고 나의 공황도 빠르게 지나가기를 기대했다.


  이주가 지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고, 아직도 약을 먹고 있다. 어제는 비상시 먹는 약이 아닌 주 치료제로 약을 바꿨다. 의사가 6개월을 두고 장기적으로 치료하자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집 밖에는 거센 비가 내리고, 집안 공기는 서늘해졌다. 올해 가을과 겨울도 나의 공황은 내 몸의 한 부분으로, 코로나는 내 생활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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