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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l 22. 2021

빨리 굳는 시멘트

  거실 베란다와 이어진 안방 방향의 베란다에는 안방 창틀 라인을 따라 4-5개의 못이 튀어나온 채 박혀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곳에서 아이가 뛰어놀다가 못에 부딪힐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출입하지 못하게 거실 베란다와 안방 베란다 사이에 안전 도어를 설치했다. 그 뒤로 1.5m 너비의 꽤 넓은 공간이 창고처럼 방치되었다.


  코로나가 심해지고 한여름의 더위도 심해졌다. 여름휴가로 바닷가라도 가려던 생각은 코로나 4단계 격상(델타 변이로 인해)과 함께 무용지물이 되었다. 신랑과 나는 여름 바닷가 대신 베란다에 아이 수영장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먼저 눈엣 가시 같던 베란다의 못을 제거해야 했다. 콘크리트에 박힌 못은 드릴로 제거할 수 없었다. 아이가 어린이집 간 사이 재택근무 중이던 신랑이 철물점에서 망치를 사 왔다. 망치로 못을 치니 못이 박혀있던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못 주변 콘크리트로 같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그렇게 5군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못은 없어졌지만, 해결할 일은 하나 더 늘었다. 신랑과 나는 콘크리트 벽면 구멍을 메우는 방법은 핸드폰으로 뒤적였다.


  신랑과 인터넷으로 알아보다가 ‘메꾸미’로 해결할 수 있다는 글을 보고, 한 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동네 마트 안에 다이소가 있었다. 며칠 뒤 우리 부부는 유모차를 끌고 마트, 다이소를 돌아다녔다. ‘메꾸미'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공구 코너에서 ‘빨리 굳는 시멘트’를 발견했다. 이걸로 베란다 콘크리트를 매울 수 있을까. 메운다면, 벽면을 평평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을 주고받다가 우리는 한 보 물러나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 길로 마트를 나와 신랑과 유모차를 끌고 아파트 입구를 향해 걸었다. 터벅터벅 걸으며 나는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아빠 보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아빠가 보고 싶다고 내뱉은 적이 없었다. 결혼식장에서도 삼촌 손을 잡고 들어갈 때도 그랬다. 그저 내 몫의 인생이 생겨먹은 모양이 그러했을 뿐이라고 여겼다. 아빠가 살아 있는 상황과 비교하며 한탄하고 슬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빨리 굳는 시멘트'를 보고 나니 아빠가 보고 싶었다.


  우리 아빠는 만능 맥가이버였다. 아빠는 못 다루는 공구가 없었다. 집에 가구든 가전이든 고장 난 건 무엇이든 뚝딱 고쳐냈다. 버려진 가구도 아빠 손길 몇 번이면 새로운 용도의 가구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아빠 손을 거치면 세상에 버려질 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아빠가 밖에서 뚝딱거릴 때, 나와 아빠가 하는 작업을 구경하곤 했다. 반면 오빠는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빠는 아빠가 일을 시킬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오빠는 나보다 아빠와 대화를 더 많이 했다. 나는 아빠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손재주가 좋은 아빠는 건설과 인테리어 관련된 사업을 하셨다. 건설사에서 수주를 따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도 아빠가 하시던 일의 정확한 명칭을 모른다. 그래서 아빠가 했던 일을 이렇게 줄줄이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시고 나서도 나는 참 무심한 딸이었구나.


  아빠는 아마 이 무심한 딸의 고민을 해결해줬을 것이다. 차를 타고 달려와 베란다 벽에 난 구멍들을 슥슥 메꿔주고 가셨을 것만 같다. 구멍뿐 아니라 색 바랜 베란다 벽면 페인트도 새로 칠해줬을 것이다. 아빠라면 아마 구멍을 메꾼자리만 색이 다른 걸 그대로 두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디 그뿐일까. 우리 부부는 1년 반 전에 구입한 10년 넘은 아파트를 리모델링 한 뒤 들어왔다. 우리 아빠가 살아있었다면, 우리 집 리모델링도 아빠가 맡아서 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좋은 재료들을 아낌없이 써서 예쁜 집을 만들어줬겠지. 그리운 생각은 끝을 모르고 ‘만약에’를 만들어냈다.



  “우리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다 해결해줬을 텐데”


  신랑은 내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는 핑계로 나는 아빠를 너무 빨리 잊었다. '빨리 굳는 시멘트'는 아빠를 빨리 잊은 나를 일깨우러 그 자리에 있었나 보다.

  우리 부부는 결국 ‘빨리 굳는 시멘트'를 사지 않았다. 대신 접착식 타일을 사서 베란다 벽에 붙였다. 베란다 벽의 못이 빠져나간 자리도, 색 바랜 페인트 칠도 모두 타일로 덮어서 가렸다. 우리 아빠가 작업했더라면 더 완벽했을 텐데. 가까이서 보면 타일이 미묘하게 삐뚤빼뚤했지만 멀리서 보면 그럴싸해 보였다. 신랑과 나의 힘으로 해결해 냈다. 우리 부부는 베란다에 놓을 풀장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뒤, 타일 작업이 끝난 베란다를 바라보며 아이와 보낼 여름휴가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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