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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l 07. 2021

우린 그대론데

  얼마 전에 잠실에서 일하는 친구와 점심을 먹고 왔다. 내가 사는 서울대 입구에서 친구 직장인 잠실까지 1시간 정도 걸리기에 아이를 10시 조금 넘어 어린이집에 맡기고 바로 지하철을 타러 출발했다. 완연한 여름 전이라 햇빛은 좋고 바람은 시원했다. 친구네 회사 건물에 도착해서 로비 한편 의자에 앉았다. 사원증을 찍고 왔다 갔다 하는 게이트가 꼭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초록의 나무들로 꾸며진 아파트의 풍경과 거칠게 마모된 보도블록으로 이어긴 길만 보다가 마주한 하얗고 매끄러운 회사 건물의 풍경이란 그러했다. 나도 2년 전에서는 친구와 비슷한 세상에 있었는데, 이제 회사를 다니는 친구와는 이렇게도 다른 세상에 있었다. 나는 층고가 높아 광활하게 느껴지는 그곳에서 게이트 너머로 친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알고 보니 친구 회사는 옆 건물이었다. 나는 엉뚱한 곳에서 친구를 기다렸던 것이다. 같은 회사 소유의 건물이었으니, 아마 친구네 회사 건물도 비슷한 내부를 가졌겠지. 친구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하얀 반팔 블라우스와 검은색 긴 머리카락을 팔랑이며 친구가 다가왔다. 나는 얼굴에 자연스레 웃음이 피어났다. 친구가 먼저 아이를 낳았고, 그 2년 뒤 내가 아이를 낳았다. 친구는 2년 전에 복직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아이 없이 둘이 만났다.


  신랑에게 아기를 맡기고 주말에 5살 아이가 있는 친구네 집에 두어 번 간 적이 있다. 당시 대학교 때 자주 만났던 다른 여자 친구 2명도 같이 만났다. 그런데 아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대화 주제는 달랐다. 아이가 있는 그 친구와 내가 꽃피우는 육아 이야기에 아이 없는 두 친구는 거의 입도 떼지 못했다. 사실 같이 모이는 4명의 대학 친구 중 그 친구는 대학시절 나와 가장 대화가 적었던 친구다. 관심사나 공감대, 수업 시간도 제일 겹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라는 공통 주체가 생긴 친구와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네 집에서 나누던 수다는 친구 아이를 케어하느라 종종 끊기곤 했다. 실로 오랜만에 친구 회사 앞 쌀국수 가게에서 우리는 끊기지 않는 수다를 편한 마음으로 나눌 수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말이 많으니, 다른 친구 둘이 이야기할 틈이 어딨겠냐며 함께 웃었다.


  친구와 쌀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찾아다녔다. 여러 회사가 모인 곳의 점심시간에는 어느 카페를 가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동네 카페에서 가볍게 커피를 사들고 오던 길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친구와 나는 두어 군데를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며 줄이 짧은 곳을 찾아다녔고, 친구 회사 앞에 테이크아웃 전문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했다. 우리는 커피를 들고 햇빛 사이를 걸어서 교통공원 안 한적한 벤치에 가서 앉았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아이와 결혼생활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에 서로 공감하며 박수를 쳐댔다. 이전에는 ‘괜찮아~’하고 넘겼던 일들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되기도 하고, 이전보다 더 많은 갈등 상황에 노출되어 그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가끔은 화가 많아진 것 같아 서글프다고 말이다.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어쩔 수 없이 변하나 봐.”하는 자조 섞인 내 말에 친구가 갑자기 내쪽으로 고개를 홱 돌려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너 그대론 거 같은데? 대학교 때랑 똑같아 보여.”


친구 말에 시무룩했던 내 입술이 금세 활짝 펴졌다. 친구는 내 말투, 성격이 대학 때와 다르지 않다며 변한 걸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내 눈에 친구도 그랬다. 친구의 목소리, 차분하게 말하는 방식, 내 말에 리액션하는 모양새도 모두 대학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귀여운 얼굴에 여리한 체형으로 청순한 느낌까지 모두 대학시절 그대로였다. 대학시절 캠퍼스 안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던 순간과 다른 점은 오직 대화 주제뿐이었다.


  1시가 되기 전에 친구는 회사로, 나는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면서 친구의 말을 곱씹었다. 말투도 표정도 우린 그대론데…, 하지만 그때와는 분명 다르다. 혈혈단신  미래만 챙기던 그때와 달리 30대의 우리는 지금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대학시절과 30 중반이 되어 친구와 나눈 대화는 달라져있었다. 30 중반의 아이 엄마가 대학시절과 같을  없겠지. 예전과 달리 달라진  애석하지만, 그만큼 우리도  거겠지. 변했다기보다는 성장한 것일지도.


청명한 바람이 불던 여름 초입에 잠실 교통 공원 벤치에 마주 앉은 우리가 있었다. 캠퍼스를 거닐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휴게실에서 커피를 나눠마시던 대학시절의 우리가 그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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