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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May 07. 2021

울음소리를 견디는 밤

  내 하루는 아이 울음소리를 견디는 일로 마무리된다. 매일 저녁 아이 침대맡에 앉아서 발등, 다리, 엉덩이, 뒷목과 아이 손가락까지 아이가 가려워하는 곳을 대신 긁어준다. 세 살배기 아들은 가려움이 해소되지 않아 괴로워한다. 몸을 활자로 꺾기도 하고 조그마한 두 손으로 제 몸 이곳저곳을 긁으며 짜증 섞인 울음소리를 낸다. 아이가 손대는 곳으로 재빨리 손을 대 보지만, 아이는 금세 다른 곳을 가려워하며 운다. 잠든 듯 얌전해졌다가도 벌떡 일어나 다시 긁기를 반복하고, 잠이 가려움이 이기는 순간 아이가 잠이 든다. 아이가 잠들기까지 30분, 그 시간 동안 아이 울음소리에 평정심을 가지려고 나는 속으로 고군분투한다.


  아이의 울음은 항상 송곳처럼 마음을 찌른다. 아프고 괴로워서 내는 울음소리는 더욱 날카롭다. 내 마음 쿡쿡 찔러서 아이가 괴롭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가 가려움을 견디는 시간에 옆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견디는 이유는 아이가 힘든 시간을 결코 혼자 견뎌내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면 내가 여기서 듣고 있노라고.


  무언가를 견디는 일에는 체력이 필요하다. 체력이 떨어지는 날이면 나는 아이 울음소리를 견디는 일이 버겁게만 느껴진다. 침대에서 내 손을 뿌리치며 우는 아이에게 ‘도대체 어떻게 해달라는 거니’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게 물어도 아이가 답을 줄리 없다. 아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고통이니 말이다. 그런 아이를 잡고 “제발 그만 가려워”하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괴로워하는 아이 모습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한다는 사실, 내가 해결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무력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도 결국 끝이 난다. 긴 고통 끝에 아이는 잠들고, 잠든 아이 얼굴은 평온하다. 아이 울음소리를 견뎌내지 못한 내가 못나서 왈칵 눈물이 차기도 한다. 내일은 아이가 조금 덜 가려워하길, 혹여 더 가려워한데도 내가 더 잘 견뎌낼 수 있길 매일 밤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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