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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l 02. 2021

네 울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하지 않을래

  아침에 콧물이 줄줄 흐르는 19개월 아이에게 의사 선생님을 보러 가자고 말했다. 이제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는 “이잉!”’하고 싫다는 의사표시를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는 이내 바닥에 몸을 드러눕고 발을 팡팡 거리기도 했다. “밖에 놀러 갈까?”하고 아이를 꼬드겨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들었다. 나는 다시 마음을 잡고 아이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 보고 오자. 우리 아기가 아파서 의사 선생님 보고 와야 해.”



  어린 시절 소소한 기억들이 있다. 유치원생이었던가, 초등학생이었던가. 집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받아서 엄마를 찾으면 없다고 대답하라고 했다. 어린 시절 나는 갸웃거리면서도 엄마 말대로 했다. 또 중학생이 되어서는 할머니 댁에 방문했다가 집에 올 때면 엄마 아빠는 있지도 않은 나와 오빠의 시험을 핑계 삼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를 채웠다. 고등학생쯤 되었을 때, 엄마가 오빠에게 어떤 일을 시키려 했던 것 같다. 엄마는 오빠에게 용돈을 주겠다고 말하고 일을 시켰는데, 오빠가 일을 다 하고 용돈을 달라고 하자 엄마는 엄마를 도와주고 돈을 달라한다고 역정을 냈다. 나는 화내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소한 일상 속에 부모님의 소소한 거짓말들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머릿속에 물음표를 채웠다. 성장하는 동안 부모님으로부터 자주 듣던 말이 있다. “거짓말은 안된다.”였다. 조금씩 머리가 크고 자아가 분리되면서 그 말은 자연스레 내게 어떤 원칙처럼 남았다. 엄마, 아빠가 거짓말하는 장면을 목격할 때면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들었던 이유일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부모님이 하셨던 거짓말들이 이해되기도 했다. 아이에게 약간의 거짓말을 하면 상황을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고, 아이를 핑계로 거짓말하면 내가 가진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거짓말로 상황을 회피한다면, 우리 아이도 나와 같이 물음표를 가지고 나를 보게 되겠지.


  초등학교 즈음 엄마가 “이런 거짓말은 괜찮아.”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제와 보니, 이런 거짓말은 나쁜 거짓말이 아니라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단순히 현재 가진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누군가를 피해주기 위한 음흉한 의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피용 거짓말도 결국은 거짓말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가진 상황을 마주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부모님이 보였던 모습이 조금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엄마가 직접 전화를 받아서 친구에게 오늘은 만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할머니 댁에서 집으로 갈 때 할머니께 부모님의 사정상 이만 집으로 가봐야겠다고 이야기했다면 말이다. 그리고 오빠에게도 용돈은 줄 수 없지만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면, 혹은 도와준 오빠에게 고맙다고 약속한 용돈을 줬다면 어땠을까.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 대신에 느낌표를 채웠을 것 같다.


 나 역시 부모님처럼 아이에게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의 울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에게 물음표로 채워진 가르침을 주고 싶지 않다. 아이가 불편해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고, 부모인 나도 아이가 불편해하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의사 선생님 보러 가자는 말에 “잉잉”거리던 아이가 어느새 마음을 바꿨는지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고 마스크를 신고 씩씩하게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말해줬다.

  “아고, 착하네. 오늘 의사 선생님 보고 올 거야. 잘 갔다 올 수 있지?”

  아이는 내 말에 “응”하고 대답을 하고는 현관 밖으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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