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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n 21. 2021

늦은 개월 수 아이를 대하는 자세

  여름 초입의 어느 날 조리원 동기와 전화를 했다. 조리원 동기는 나보다 세 살 어렸고, 조리원 동기의 아이는 우리 아이와 같은 병원에서 같은 날에 한 시간 먼저 태어났다. 우리는 같은 조리원을 사용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우리는 둘 다 처음 엄마가 된 거라 각자 헤매며 서로 응원하는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날은 내가 15개월 아이의 생떼에 지쳐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아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문득 내가 질문을 했다.


“우리 애들 11월생이잖아. 걱정 안 돼?”


동기는 “늦은 개월 수 아이”가 뭐냐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나도 얼마 전까지 몰랐던 내용이었다.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알게 된 “늦은 개월 수 아이”에 대한 걱정을 동기에게 풀어놓았다.




  11월에 태어난 우리 아이는 태어난 다음 해 11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걷기가 서투른 아이를 안고 따뜻한 온기를 서로 나누며 차가운 겨울 등 하원 길을 걸어 다녔다. 어린이집 등원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엄마와 손을 잡고 서있는 여자 아이와 마주쳤다. 우리 아이보다 누나 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반 친구였다. 2월 생이라던 그 여자 아이는 걸어서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아이도 곧 이렇게 잘 걷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따뜻한 봄기운이 스며들 때쯤 우리 아이는 걷는 게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아이는 이제 하원길에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다. 어떤 날은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 가방을 든 할머니와 남자아이를 만났다. 우리 아이보다 형일 거라 생각했던 남자아이는 우리 아이와 같은 반 친구였다. 3월생이라는 남자아이는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할머니가 “친구랑 인사해야지”하는 말에 남자아이는 “아니”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할머니 팔을 끌었다. 남자아이가 은근 야속하긴 했지만, 우리 아이 몇 개월 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마냥 귀여워 보였다.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쯤 우리 아이는 내 손을 뿌리치고 걸어 나갔고, 계단도 곧잘 올랐다. 아이 등원 길에 어린이집 적응기 때 만났던 2월생 여자 아이를 마주쳤다. 여자 아이 엄마와 나는 아이 둘을 사이좋게 등원시키고, 함께 되돌아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 아이 엄마가 말해주길, 여자 아이가 집에서 우리 아이를 보고 ‘아기’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런데 여자 아이 엄마의 첫째 아들 이야기를 들을 때는 웃을 수만은 없었다.


  여자 아이 엄마의 첫째는 6살 남자 아이고, 12월 생이라고 했다. 첫째 아들은 같은 나이 친구들보다 발달이 느려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힘들어한다고 했다. 사실 첫째 아들은 자신의 개월 수에 맞춰 잘 성장하고 있는 거였다. 아무래도 늦은 개월 수 아이인지라 또래 친구들의 평균 발달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고, 유치원이나 놀이터에서는 친구들에게 치인다고 했다. 엄마로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이도 친구들은 당연하게 하는 걸 자신만 해내지 못했을 때 크게 실망하고, 울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집에서 첫째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공부를 시키고, 소근육 발달을 위한 놀이도 하면서 6살 평균 발달 정도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아들도 늦은 개월 수 아이였다. 나는 여자 아이 엄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쏟기 시작했다.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늦은 개월 수 아이의 엄마는 노력을 많이 해야 했다. 아이 말이 빨리 트도록 도와야 하고, 아이 소근육 발달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야 우리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자존감을 지켜 나갈 수 있을 터였다. 아이를 출산할 때는 몸조리하기 좋은 겨울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11월에 태어난 덕분에, 우리 아이는 앞으로 살아나갈 세상에서 늘 평균보다 뒤처지는 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그 뒤로 등 하원 길에, 놀이터에서 마주치던 빠른 개월 수 아이들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이렇게 차이가 큰 아이들이 같은 학년이 되겠구나. 나는 점점 마음에 걱정을 담기 시작했다.




  “에이, 괜찮아. 우리 아가들 개월 수에 맞게 잘 크고 있으면 된 거 아니야?”


  내가 풀어놓은 “늦은 개월 수 아이” 걱정에 조리원 동기는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했다. 동기 말도 틀린 것이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가 받을 상처가 걱정되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갈 때, 우리 아이가 스스로 뒤처진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되었다. 친구들에게 밀려 받게 될 마음의 상처가 걱정되었다.


“앗 그럼, 우리 아이들 마음을 단단하게 해 줘야겠다~”


 말을 듣던 조리원 동기가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향이었다. 조급하게 미래로 달려 나가고 있던 걱정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조리원 동기와 전화를 끝마친 후로도 동기의 말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동기 말처럼 내가 끌어당기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 속도에 맞춰서  크고 있었다. 어린이집을 다닌 겨울부터 여름이  지금까지 늘어난 걸음걸이 수처럼 말이다.  빨리 성장하라고 끌어당길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는 일이 엄마인 내가  일이었다.


  그렇게 혼자 오르락내리락하며 “늦은 개월 수 아이” 걱정을 하던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오늘도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눈을 맞추고 교감을 한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빨리 말이 트면 좋겠다고. 아직 “늦을 개월 수 아이”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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