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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n 12. 2021

감사할 줄 아는 어른

  임신 초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2019년의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사무실에서 나는 핸드폰으로 사람들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갔다. 이 중 몇 명에게는 따로 선물을 보내고, 회사에서 볼 수 있는 몇 명에게는 점심시간에 식사를 대접하고, 회사에서 볼 수 없는 나머지 사람에게는 메신저로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게 마음을 써주었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나는 두 번째 임신을 한 상태였다. 일 년 전 첫 번째 임신은 유산으로 연결되었다. 당시 병원 진료실에 누워서 아기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의사에게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하고 묻자 의사는 자연의 섭리라고 말하며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틀간 눈물을 쏟으며 기어코 내 잘못을 찾아내려고 했다.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마음속 깊이 스스로는 떳떳한 인생을 살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는 마음에 짐이 있었다. 나는 대학시절 어느 교수님과 조교님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덕분에 학교를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분들께 감사 인사를 챙기지 않았다. 어쩌면 내게 누군가 벌을 준 건 아닐까.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감사할 줄 모르는 내게 아이를 줄 수 없다고 데려간 것 같았다. 그렇게 유산 후로 마음의 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유산 후, 수면 위로 올라왔던 마음의 짐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두 번째 임신을 하고 나서야 다시 수면 위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자마자 감사함을 표현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으로 메모 앱을 켜서 교수님 뿐 아니라 생각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함께 적어 내려갔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명씩 직접 연락을 하거나 선물을 보냈다. 사실해보지 않은 일이라,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처음엔 순수히 감사하는 마음만 있었던  아니었다. 뱃속 아이를 데려가지 말아 달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면서 조금씩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나 혼자 이뤄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교수님 덕분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당시 학업을 중단했다면 지금의 신랑과 결혼 지도 모를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회사생활 중에도 내게 마음을 써주던 동료와 상사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가 회사생활을 9년간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은 왜 이리 힘든지, 회사에는 이상한 사람이 이리도 많은지 불평만 하고 있었다. 내가 분노할 대상에 집중하느라 감사할 대상은 뒷전으로 두고 있었다. 나는 정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뱃속 아이에게 부끄러워졌다.

 

  감사하다고 연락을 돌릴 , 모두가 공통으로  말이 있었다. 자신이  일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대학 시절 장학금을 주셨던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수님이  일은 내게 감사 인사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며 혹시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의 후배와 자녀에게 돌려주길 바란다고 말이다.    


  연락을 모두 돌린 후, 나는 당연한 일들 속에서 감사함을 얼마나 발견하고 있나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가진 상황들이 정말 당연한 일인지 의문도 들었다.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내가 아이에게 돌려줘야 할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에게 돌려줘야 할 것은 감사함이었다.    


   임신 초기에 감히 엄마 모습을 상상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더 나은 어른은 되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한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사실 당연한 줄 알았던 일들은 알고 보면 당연하게도 감사한 일들이었다. 뱃속 아이가 유산되지 않고 안정기까지 유지된 일처럼 말이다.


  이후, 뱃속 아이는 임신기간을 잘 버텨내고 예정일 2주 전에 세상에 나왔다. 이제 아이는 18개월이 되었다. 임신 중 했던 다짐 이후로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아이도 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세상에서 감사함을 느끼면 좋겠다. 나아가 자신이 느꼈던 감사함을 주변에 돌려주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 아이가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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