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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Dec 04. 2021

내 지니인 것은 털과 내 몸뚱이뿐.

큰 공간도 좋은 옷도 필요 없다.

소비라는 자책


나는 쇼퍼홀릭이자 맥시멀 리스트이다.

나의 쇼핑 습관을 들여다보면 미리 사서 쟁여놓기, 많이 사기, 할인하면 사기 등 소박하거나 절약적인 소비 습관과는 한참 멀다. 이러한 나의 소비 행태는 '소유'를 갈구하는 '결핍'에서 왔다. 어려서 나는 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내 것이라는 걸 가져보지 못했다. 항상 나누고 물려받고 물려주는 생활을 20년 가까이했다.

사회에 나가 직업을 얻고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것'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소유해야 마음이 놓이고 직성이 풀렸다. 가방, 옷, 액세서리, 책, 자격증..


가정주부가 된 지금도 나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살림살이를 제대로 하려고 생각할수록 왜 이렇게나 필요한 물건이 많은 건지. 나 하나 치장할 때는 나에게 필요한 소품의 깊이를 탐구하고 쇼핑했다면 지금의 내 쇼핑 스팩트럼은 나를 넘어서 아이, 전체 집안 살림에 이르기까지 넓어지고 더 깊어졌다.


'bedding'만 생각해도 알아보면 내가 모르던 아이템이 천지다. 소비의 세계란 어마어마한 깊이를 가지고 있고 또 꽤나 전문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언박싱 유튜브가 인기를 끌고 상품 리뷰 콘텐츠를 사람들이 보는 것이겠지.


결론적으로 내게 쇼핑은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어려서의 결핍이 낳은 하나의 비극적인 무의식적 행위이며, 긍정적인 측면을 찾자면 전문가의 영역처럼 성스러운 것이다.

아직까지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소비를 감당할 수입이 점점 줄어들 앞으로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이러한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물건을 꼭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사놔야 불안감이 사라지는 나를 관찰하며 '아, 또 그랬구나..'하고 나의 행동을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은퇴하기 전까지 소유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마음 상태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소비를 하려면 필연적으로 수입이 있어야 한다. 내가 '왜 돈을 버는가?'를 생각해보면 다양하고 보편적인 이유들이 떠오른다. 1) 아이가 아직 한참 크고 있어서 돈 들 곳이 많아서 2) 갚아야 할 은행빚이 있어서 3) 모아놓은 돈만으로는 죽을 때까지 먹고 살기 부족해서.. 아이가 있는 부모는 보통 이런 이유로 돈 벌러 나갈 것이다.


생존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보니 먹고살며 소소하게 소비하는 돈 말고도 큰돈 드는 일이 너무 많다.

집을 장만해야 한다든지, 더 큰 집으로 가야 된다든지, 투자를 해야 한다든지..

'소비'라고 말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역시나 돈이 있어야 되는 일들이다.  


또한 내게는 부차적으로 나를 위한 소비 또한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버는 이유도 있다.

나의 외모를 가꾸고 싶고,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싶고, 나만의 즐거움을 찾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지 않고 쓰기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일한다.


소비를 조절할 수 없을 때 나는 나를 심하게 자책하기도 한다. '꼭 필요했을까', '좀 더 기다렸다 사도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 자책하지 않으면서도 슬기롭게 내 행동을 객관화하여 바라보고 개선해나가는 것이 아마도 앞으로 좀 더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나의 과제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나도 스스로 내가 한심스러울 때가 있는데, '쯧쯧, 또 샀냐?'라든가 '돈을 아주 그냥 못 써서 안달이네', '집 좀 제대로 된 걸로 하나 사야지? 재테크는 안 해?'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내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나의 반발심만 부추기는 불쏘시개 역할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나의 소비에 대해서 고백하지 않는다.


서툰 재테크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지금까지 소비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단순히 소비에만 있지는 않다. 최근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화두,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엔 재테크가 또 어찌나 붐인지. 재테크 잘해서 크게 돈 번 사람들 이야기가 여기저기 소개되고 책, 유튜브, 블로그 할 것 없이 재테크 콘텐츠로 넘쳐난다. 소비는 국가대표급이지만 재테크에 대해서는 입문자만큼도 못 되는 나는 요즘 참 즐겁지가 않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성공담을 들으면서 뭔가 좀 배워보고 싶지만 너무 남의 이야기처럼 들려서 더 위축되기도 한다. 재테크를 위한 기술이 없는 것이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최근 소비에 관해서는 에너지가 바깥으로 향해있고 치료가 필요한 나에게, 재테크 못해서 불안한 나에게 그 어떤 백 마디 충고보다 그 어떤 전문가보다 훨씬 큰 위안을 주는 존재가 있다. 우리 집 반려견 하늘이다.


그저 가진 것이 몸뚱이 하나밖에 없지만    자고, 먹을   먹고    논다. 자기   누일 곳만 있으면 아무 고민 없는 댕청한 얼굴로 온몸의 긴장을 빼고  쉰다.  집도 필요 없고 예쁜 옷도 필요 없다. 그저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작은 공간이 편안하기만 하면 된다. 소비에 집착도 없고 미래의 재산을 고민하지 않는다.  지니인 털과 몸뚱이뿐이지만 충분히 행복하다.


나는 왜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소비하고,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러한 욕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지금의 내가 누려야 할 행복을 보는 눈을 가려버린다.


저녁밥을 야무지게 뽀각뽀각 먹고 물 한잔 마시고 나서 소파든, 바닥이든, 자기가 편한 자리로 가서 앉아서 쉬고 있는 하늘이를 보면 '인생이 뭐 있어? 편하게 살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하늘아, 요즘 세상에 밥 못 얻어먹고 사는 사람은 없다는데, 집착을 좀 버려야 되겠지?'

'집착? 그게 뭔데? 먹는 건가? 나는 졸려서 이만.. zzz'

'그래, 하늘아 인생이 뭐가 있나? 나도 니 옆에서 그냥 속옷만 입고 널브러지련다. 밥 못 얻어먹고 사는 사람도 없다는데..'


내 몸 하나 딱 들어갈만큼 폭신한 공간만 있으면 나는 행복하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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