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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Jul 01. 2022

파란만장 팀장 탈환기

우리 회사의 전설적인 오뚝이가 되었다. 

2번의 보직해임을 당하면 겪게 되는 일


나의 직장생활이 참 기구하다.


어떤 사람들은 조직개편이 되어도 다른 팀의 팀장으로 발령 나고 본부장도 되고 잘만 되던데, 나는 쭉쭉 올라가기는커녕 두 번이나 팀장에서 보직 해임되는 일을 겪었다.

2020년 코로나가 확 퍼지기 시작하던 2월. 나는 두 번째 보직해임을 당했다.


회사가 나에 대해서는 영구적으로 리더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을 했다 생각했다.


이직도 맘처럼 되지 않았다. 이제 마흔 중반, 내가 이직할 수 있는 자리는 피라미드의 위쪽이다. 가파르게 좁아지는 영역의 포지션. 게다가 쭈욱 몸담았던 이커머스 일이 아니라 어정쩡한 해외 수출업무를 하고 있던 처지. 게다가 팀장에서 보직해임된 사연있어보이는 커리어. 

'왜 보직 해임되셨어요?' 인터뷰를 가면 단골로 듣는 질문. 또 예상되는 질문이라 미리 변명해야 하는 스토리가 되었다. 

나는 커리어가 망가졌다고 생각했고, 직장에서의 성공과는 멀어졌기 때문에 철저한 변방의 아웃사이더로서 그림자처럼 회사를 다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처럼 보직해임이 되었던 몇몇의 사람들이 모두 죄인처럼, 그림자처럼 그렇게 영혼 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팀장! 이런 걸 달고 태어나는 일도 없지만 주어진 보직이 사라지는 일은 참 개인에게는 감당하기 힘들고 잔인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차라리 처음부터 보직을 달지 않았으면 몰라도,  팀장을 했던 경력은 조직 내에서 주홍글씨와 같다. '팀장이었다'라는 것은 이미 나이가 좀 있다는 소리이고, 실무에 바로 써먹기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그래서 팀장을 달았던 인력을 반갑게 맞아줄 팀은 별로 없다.

여전히 실무를 할 수 있지만 비중 있는 일이 또 주어지지는 않는다.  팀장 입장에서는 일 시키기 좀 버거운 상대일 것이고, 자칫 또 비중 있는 일을 시켜서 잘해버리면 본인의 팀장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뭔가 쓰임을 다한 퇴물 같은 취급을 받기 쉽다.


보직해임에서 가장 곤란하고 가슴이 아픈 것은 사람 간의 관계이다. 소위 달고 있던 계급장이 떨어지는 건데, 계급장 떨어진 상사가 되면 조직에서의 인간관계의 진정성이 드러난다. 단순히 팀장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잘해주었던 이들에게 있었던 상하관계의 막이 걷힌다. 누가 진짜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지, 누가 그저 '팀장에게 잘 보여서 회사생활 좀 편해보자'는 목적의 친밀감을 가졌는지 알게 된다. 이 과정이 참 상처가 되는 것 같다. 


웬만하면 보직 해임은 경험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오더라도 평균 수명이 길어진 요즘 세대들은 회사를 쉽게 그만둘 수도 없다. 우리 아버지 세대처럼 보직 해임되면 박차고 나가서 치킨집이라도 차리기엔 예견되는 미래가 너무 막막하고 모험을 하기엔 또 남은 생이 너무 길다.


보직해임을 2번이나 겪으면서 나는 좀 직장생활의 덧없음을 알게 되었다. 조직에 개같이 헌신해도 결국엔 내 것이 아니라는 것. '팀장, 실장, 본부장..' 이런 것들은 그저 내가 잠깐 스쳐가는 직책일 뿐이지, 그런 자리에 간다고 세상 다 얻은 것처럼 나대서도 안되고, 또 자리에서 내려온다고 해서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가족이나 건강 같이 나의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고 자연인으로서 나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감투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라는 진리도 알게 되었다. 물론, 조직에서 성장이 꺾인 사람의 자위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정말 소중한 깨달음이었다. 내가 계속 승승장구했더라면 몰랐을 정서적인 가치들.


보직해임이 좋은 것도 있었다. 책임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졌고, 본부장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굳이 회사의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졌다. 존재감이 미약해지니 행동이 편해졌다. 슬프지만 묘한 관계의 한적함을 나중에는 엄청 즐기게 되었다. 


세 번째 팀장 보직발령을 받았다.


'야~ 배 팀장, 잡초네 잡초. 안 죽고 다시 살아왔네.'

이전에 모시던 본부장이 찾아와서 새우튀김 같은 소리를 내는 빗소리만 가득한 사무실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비가 억수같이 들이붓던 6월의 마지막 날 조용히 조직개편과 발령이 떴다.

나는 다시 팀장 보직을 받았다.

8년 전 회사에서 최초로 팀원에서 발탁된 팀장으로 보직을 받았을 때의 성취감, 4년 전 다시 팀장으로 기용되었을 때의 안도감.. 이런 감정은 없었다.

'2년이나 팀장을 쉬었는데 잘할 수 있으려나..? 또 얼마나 맞춰야 하나? 휴가는 갈 수 있나..??'

이런 계산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보직해임을 받고 수출 조직으로 조직이 이동된 뒤,  8년 전에 내가 만들었던 팀의 팀원으로 올해 초에 다시 복귀를 했다. 내가 팀원으로 데리고 있던 친구들이 여전히 일하고 있는 이곳. 

팀장으로 떠났다가 팀원으로 다시 왔을 때..'아우 이 우라질 팔자'라는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내 기분은 비참했다. 팀장과 팀원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내 마음에 굳은살이 배겨서 웬만한 처우에는 별로 동요를 안 하는데 그날은 기분이 참 묘했었다.


나는 내가 만들었고 내쳐졌던 팀에 다시 팀장이 되었다.


팀장 발령받고 제일 기뻤던 것은..


역시 함께 기뻐해 준 사람들이다.

둥글둥글하지 못한 성격의 나는 인간관계에서 호불호가 좀 나뉘는 사람이다.

나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면 나를 아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 준 이전 수출팀 팀원 꼬맹이.. 

예전 대표님에게까지 내 소식을 전해준 날 잘 따르는 여자 과장, 

같은 사업부 팀장들, 실장님

8년 전 동료 팀장이었으나 지금은 너무나도 잘 나가는 상품본부 본부장님,

지금은 모회사의 대표로 계시면서 우리 회사 대표에게 내 이야기를 잘해주신 선배님.


무슨 수상소감 같기도 하지만..

정작 나는 괜찮았는데, 꼭 팀장으로 복귀할 거라고 걱정해주고 격려해주었던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다.


나의 팀장 복귀는 살면서.. 진짜 사람하고의 관계를 잘 일구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이전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이고, 더 집중해서 일해야만 할 것이다.

휴가 가는데 눈치를 보게 될 것이고, 땡 하면 퇴근하던 칼퇴도 그리울 것 같다.


이제 팀장은 진짜 그냥 보직 이상의 의미가 내게는 없다.

다시 보직 해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지난 두 번과 같은 심적 대미지는 없을 것이다.

내가 직장인으로서 얼마나 더 일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이 많은 데 민망하지 않게 보직을 달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뭐 또 보직 해임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지난 2번의 팀장 경험처럼 완전히 몰입해서 마치 이 회사가 내 회사인 양, 실적이 우리 집 가계부인 양.. 하진 않으려고 한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잘 연기해보련다.

내게 없는 정치력이 갑자기 생기진 않겠지만.. 척은 할 수 있겠지.


팀장 시즌 3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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