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노동과 창작, 그리고 역할에 대한 고찰
디자이너들은 2가지 상반되는 감정으로 생성형 AI 서비스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단 AI가 디자이너의 생산성과 창의력을 덮어버릴 것이라는, 기술적 실업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반대로 진취적인 디자이너들은 아직은 도입기라고 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내 장점을 어떻게 극대화하고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창조적 파괴에 대한 기대감 또한 갖고 있습니다.
생성형 AI는 디자이너에게 두려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기술적 실업의 예로는 실제로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IT인력의 감축이 기술에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실리콘 벨리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창조적 파괴까지의 수준은 아니지만 AI만을 활용한 이미지, 영상 제작 중심의 브랜딩 에이전시나 마케팅 자동화에 초점을 둔 마케팅 에이전시의 등장 또한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들은 트렌드에 시달리는 직업 중 하나입니다. 업계에 대한 트렌드를 계속 쫓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실무에 필요한 툴들의 업데이트와 신규 서비스들이 등장하는 주기 또한 매우 짧아지고 있습니다. 즉, 자의든 타의든 흡수해야 할 정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소수의 모범사례들을 다수의 디자이너들이 접하면서 뒤쳐지고 있다는 이 불안감은 잘 이용하면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자기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다지어 너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디자이너답게 자기중심을 갖고 생성형 AI서비스들을 사용하려면 어떤 마음가짐과 접근을 가지면 좋을까요?
저는 디자인이라는 본질적인 행위를 두 가지로 나누자면 장인정신(Craftmanship)과 연출력(Directing)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장인정신이란 노동력, 집요함, 필요한 스킬 셋, 툴 등이 해당될 것이며, 연출력이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해당되는 레퍼런스, 배경과 연관된 문제 인식, 창의력 등이 해당될 것입니다.
결국 AI 툴들도 인간의 노동과 창의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고요. 그런데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내'가 디자인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어찌 되든 결과물은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AI에게 '유레카'를 기대하고 작업을 맡긴다면 그만큼 내 의도를 투영하기 힘들 것입니다.
위 디자인의 본질과 이어서 이를 이루고 있는 항목들을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AI를 단순히 좋은 작업물을 대신 만들어줄 보조툴로 이해하기보단 나의 명확한 의도를 '장인정신'과 '연출력' 측면에서의 도움을 받으려면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조적인 설명이 가능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걸 '메타 인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디자인 대상을 뭉뚱그려 통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는 항목들을 도출하고 그 항목에 해당되는 특징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midjourney로 미국 서부시대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구현하고자 한다면 대략
A daguerreotype photograph of American frontier life in 1870, showing a group of cowboys at a trading post, detailed period-accurate clothing and equipment, harsh natural lighting, sepia toned, vintage photo artifacts, high detail --ar 3:2 --style raw --q 2 -
인간의 장인정신으로 해결했던 부분
사진 품질 관련
--q 2, --q 3 등의 퀄리티 파라미터 조정
--style raw 파라미터로 사진적 특성 강화
--ar 3:2 등 당시 사진 비율 반영
Aspect ratio 조정으로 다 게레오타입 사진 비율 구현
연출력 (Artistic Direction) 측면:
서부시대의
구도와 분위기
시대적 요소 연출
스토리텔링 요소
에 해당되는 내용의 인지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임기응변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보통 임기응변이라 하면 재치, 순발력, 잔머리 등 급박한 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얘기하지만 임기응변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디자인의 시스템적인 활용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현실 속 디자인 업무에 적용하자면 딱히 이유 없이 '그럴듯한 것들'을 짚어 넣는 디자인을 얘기합니다. 앞서 말한 디자인의 본질과 메타인지를 AI서비스에 투영시킬 때 임기응변에 의존했던 습관들이 방해가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람과 잘 일하는 방식과 AI와 일하는 방식의 큰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AI와의 협업을 논의하기 이전 시대에도 일을 잘하는 조직은 일에 대한 본질과 메타인지가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UX, UI 디자인을 예로 들자면 조직의 의사결정자가 시도 때도 없이 '단선적인 피드백'으로 프로덕트 영향을 주는 조직은 앞서 말한 임기응변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전체 최적화를 간과한 체 그때그때 상황만 넘길 결정 및 잔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는 거죠. 이것이 쌓이면 사람이건 AI이건 별로 건들고 싶지 않은 업무환경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속성 있는 프로덕트 팀은 '디자인 시스템'을 잘 활용합니다. 모든 팀원이 '시스템 사고'를 기반으로 제품의 UI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것들이 제품에 맞는 UX패턴들이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대부분의 결정을 시스템 요소의 선택과 조합으로 해결하며 여기서 보장받은 생산성이 조직의 창의성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생헝형 UI툴과 플러그인들은 크게 기획측면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방식과 기존의 디자인 시스템을 선택해서 이를 기반으로 UX패턴들 구성해 주는 방식이 있습니다. 디자인 능력이 떨어지는 기획자나 일반인이 독립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는 전자가 활용도가 높을 테지만 팀 단위의 프로덕트 레벨까지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디자인 시스템과 결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Midjourney, Flux, Runway 등의 영상, 이미지 계열 생성형 AI 서비스 그리고 Cusor와 같은 코파일럿 서비스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상, 이미지, 코드 파일들은 데이터 학습 및 라벨링 측면에서 매우 유리한 조건들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UI디자인 영역에서 figma의 AI make 및 기타 third party 플러그인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수준이 떨어질 뿐 아니라 내 의도를 명확한 투영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이는 이미지, 영상, 코드보다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규칙성 및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 힘들 뿐 아니라 저작권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점은 어떻게든 극볼될 것이라 봅니다. 특히 2025년에는 어떤 툴들이 어떤 양상을 보일지 솔직히 무섭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이 와중에 디자이너는 모든 툴들을 다 써보면서 트렌드를 쫓아간다는 마인드셋보다는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디자인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어떤 툴을 쓰든 간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라는 걸 확신합니다. 왜냐면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에서도 좋은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서 이 문법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서는 미드저니를 예로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쉽지만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파라미터들은 이미지를 정확하고 높은 퀄리티로 만들기 위해서 있으면 좋을 항목들을 미리 정해서 사용자들에게 사용하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메타인지를 간과하기 쉽기 때문이죠.
앞으로 UI 툴들은 이러한 과정을 어떻게 극복할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들이 어떤 시스템과 UX를 제공하든 간에 디자이너 스스로가 디자인의 목적을 구조화하고 이에 필요한 레퍼런스 및 스킬셋들을 prompt로 옮기는 능력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는 사실 새로운 능력이라기보다 애초에 디자이너가 잘했어야 하는 것들을 AI가 알아듣기 쉽게 글로 옮기는 것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