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발행'되는 글을 쓰기까지
제법 긴 시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사실은 브런치뿐만 아니라 그 어떤 글도 쓰지 못했다. 글은 없고 메모와 일기만 쌓이는 나날이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로 남기며 오늘 밤은 이 메모로 글을 쓰기를, 내일 낮에는 어제 적은 일기의 연장선으로 글을 쓰기를 바랐다. 그렇게 바라기만 하다 4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는 생각에 메모는 쌓였다. 하지만 메모는 그래봐야 메모일 뿐. 스쳐 지나가는 감상으로 메모를 남겼지만 그 메모로는 무엇도 더 할 수 없었다. 메모가 글로 발전하기까지 들여야 하는 노력이 있다. 시간을 들여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당연하고 메모로 진행된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빠뜨린 정보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스쳐 지나간 생각을 메모로 기록했다면 이제는 그 생각을 계속 들여다보고 수정해야 한다. 메모에 적은 내용이 맞고 틀린지부터 이미 누군가가 생각해 내서 비슷한 글을 쓴 것은 있는지, 내가 빠뜨린 정보는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렇게 메모는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며 비로소 글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가지 못하고 4년을 헤맸다.
처음은 귀찮음이었다. 잠시 기록해 놓은 감상을 다시 꺼내서 살펴보고 수정하고 정보를 찾는 그 과정이 귀찮았다. 자리에 앉아 그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글을 쓰겠다는 의지는 꺾였다. 어떤 메모든 메모를 작성하는 순간에서 벗어나면 완성에 대한 마음은 차게 식어버린 뒤였다. 생각은 행동을 앞질러 멀리 달아났다. 메모를, 생각을, 감상을 발전시키기 위해 내가 들여야 하는 노력을 상상하는 순간, 귀찮음은 그 세를 불려 나를 짓눌렀다. 도저히 상상으로 들이는 노력을 직접 행동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메모는 발전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런 메모가 하나 둘 쌓여갈 때마다 귀찮음은 배가 되고 노력은 상상이 되며 그 상상으로 나는 점차 우울해졌다.
그렇게 나는 실로 완벽하게 글에 대한 우울에 빠졌다. 도저히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글을 완성하기 위해 어떤 정보를 찾아야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전개해서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글을 쓰기가 싫어졌다. 그 긴 시간과 먼 과정을 내딛기가 어려웠다. 걸으려 내딛는 순간 그 과정과 도착을 상상하면 도저히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나마 간신히 두려움을 이겨내고 글을 쓰면 문장을 쓸 때마다 이 글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오해는 사지 않을지, 그 오해가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를 걱정했다. 그런 생각을 겨우 이겨내고 한 문단을 완성해도 그 뒤로는 이어서 쓸 수가 없었다. 결국 두 줄의 여백을 주고 전혀 다른 방향의 문장을 쓰고 다시 문단이 만들어지면 또 두 줄의 여백을 주기를 반복했다. 분명 다른 작가의 브런치에서 이기적으로 쓰라는 말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 이기적이어야 하는지, 얼마나 이기적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되묻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했음에도 동시에 쓰던 글을 진행하지 못하고 다시 미완성인 채로 저장하기를 반복했다.
글에 대한 우울과 쓸 때마다 바스러지는 자신감에 글은 완성되지 못하고 메모와 일기만 반복하며 살았다. 스스로 적어 내려가는 글에 대한 불확신은 자존감을 박살 냈다. 그 무엇도 성취하지 않아도 됨을 알면서도 무언가 되기를, 무슨 의미를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최소한의 의미가 생기기를 바랐다.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한 날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내가 이런 상태인지를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날 응원했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말이 나오면 내게 늘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너는 잘 될 거야" 같은 말을 해줬다. 그들 모두 내가 쓴 글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보여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보여주지 않았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날 응원했다.
글을 쓰며 살겠다 다짐하고 시간이 지나 주변에서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지 물었을 때 나는 전날 밤 아무것도 쓰지 못한 백지를 생각하며 글을 계속 쓰겠다 했다. 그건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은 불안이었다. 아무것도 쓰지 못했음에도 백지 앞에서 괴로워하던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고자, 그 모든 시간들을 그저 없는 시간으로 만들 수는 없었기에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쓰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상상했지만 동시에 정말로 그럴 수 있을지를 의심했다. 가끔은 그 의심이 지나쳐 정말 그런 삶이 있기는 한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오랫동안 제대로 글을 마무리 지어보지 못한 탓에 그 어떤 메모와 감상과 생각과 상상도 글이 되지 못했다. 아직도 메모를 보면 그것을 글로 펼쳐 내는 것에 귀찮음과 두려움을 느낀다. 무엇을 조사해야 할지, 어떤 정보를 선택해야 할지는 항상 곤란하고 쓰는 문장마다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 망설임 때문에 어떤 문장도 쓰지 못한다면 나는 계속해서 메모만 쓰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이 글은 더 이상 그러기를 거부하는 발악 같은 첫걸음이다. 그 첫걸음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오늘 이렇게 써 내려간 내가, 내일의 나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