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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Feb 08. 2023

함께하는 투병기 회고 - 경계인 편

절대자는 견딜만한 시련을 주신다는 말은 거짓말 같았지만, 아버지를 보내는 과정에서 제가 경험한 고통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 못할, 더 고된 사정에 있는 분들이 오히려 대부분이라 제 이야기만을 할 뿐입니다. 아버지를 납골당에 모셨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감정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온하다고 할 만큼 무덤덤 했습니다. 슬프지 않아서 이상했습니다. 제 마음의 치유를 위해, 그리고 이후에 덮어씌워질 경험과 기억들로 희미해 지기 전에 아버지의 모습을 글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의 작별 이야기지만, 불완전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고, 사실은 그 과정에서 마모되고 재생되고 변화하는 제 마음의 이야기 입니다(그래서 재미는 없습니다). 그 경험을 글로 옮겼다고 해서 더 나은 존재가 된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가 morph 하신 것 처럼 제게도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나 배울만한 구석이 새로 생겼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살다보니 누군가 시크하게 툭 던져 준 위로나 어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일으키게 하는 경험을 합니다. "너무 걱정하지마 너는 이겨낼 수 있어" 같은 흔한 말인데도 녹여진 진심의 힘을 보았습니다.  몇 달 전에 비슷한 과정을 겪어낸 친구의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비슷한 일을 겪어보지 않았는데도 어떤 말을 할지 모르지만 찾아와서 시간을 선물해준 온기도 기억에 새겨져 있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많은 분들의 걱정과 애달픈 배려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제서야 하나씩 떠오릅니다.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인 사랑이 <표현되고 받음으로 완성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두 마음이 비로소, 그제서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이 정도 충격이 아니면 저는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들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미 왜곡되었을지라도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 자기확신이 있는(그래서 오만해 지기 시작하는) 40줄 넘은 사람에게 새로운 이데올로기나 깨달음이 있을 리가 없는 것 처럼요. 


저는 죽는게 두렵습니다. 이전에는 막연히 두려웠고, 이제는 단지 구체적으로 두렵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것들은 필연 저를 울게 만들테니까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된다는 불가항력적 창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력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절절히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글자로 저는 담담하고 씩씩한 척을 하지만 그건 제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을 투영해서 잰체하고 싶어하는 의지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그래도 어떤 분께는 문장 하나나 글자 하나라도 안심이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겸손한 바람으로 글을 공개합니다. 


스스로에게는 "나만 힘든게 아니니까 힘내보자!" 라고 말하지만, 그 메시지가 타인을 통해서 올 때는 "너도 많이 힘들었지?" 가 됩니다. 그래서 울림있는 제안을 해주신 지연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합니다. 


혹시라도 비슷한 경험으로 치유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으시면 지연 작가님의 글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norang



덧, 추천 리소스


1. 석동연 작가님의 "아빠를 위하여"

http://www.yes24.com/Product/Goods/84933955 

암종과 시기는 달랐지만 많이 참고가 되었습니다. 전체 과정을 이해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되지만, 사실 보는 내내 눈물이 나는 건 막기 어렵습니다. 

2.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김범석 선생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6971128

막상 본인이나 당사자가 되면 읽기 힘든 책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3.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김범석 선생님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humsuk

항암, 요양, 증상 관리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품을 수 있는 의문과 해답을 제시합니다. 

실질적인 방법도 간간히 언급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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