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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Oct 06. 2024

코드 유토피아

2장 선택

어두운 회의실 가운데, 차가운 인공조명이 천장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듯 테이블 중앙에 늘어져 있다. 파랗게 빛나는 테이블과 가장자리를 둘러싼 회색의 스마트체어들, 그리고 정부 고위 관료들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증강현실 속 통계 자료들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고 회의가 시작되기만을 묵묵히 기다리는 듯했다.

'제13차 인구정책회의'


여러 채널을 통해 미리 언지를 받았던 사람들, 사회혁신부와 밀접한 언론인들이 최근 일제히 몸을 사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 더 이상의 성과가 없는 이 지진한 회의 다음에 모종의 전략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다고 느낀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 이 회의는 단순한 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존속 여부를 판가름할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박민호 사회혁신부 장관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크기의 VR 안경이 그의 코 끝에 갸냘피 걸려 있었다. 그는 잠시 회의실 벽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다가 맨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지함은 회의실 전체를 가라앉게 만들 만큼 무거웠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회의 시작하세요. 대통령께서는 몸져누우신 관계로 오늘 논의된 내용들은 사후에, 그러니까 사후재가입니다.

그의 강한 어조에 누구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토록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의 무호응은 오히려 이 문제를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궁박한 심리 상태를 대변했다. 상황판에 떠 있는 그래프와 각종 수치들은 이미 너무도 절망적인 현실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산율은 0.03 미만으로 떨어진 지 오래되었고, 젊은 세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전체인구의 86%가 65세 이상의 노인, 80세를 넘은 인구비율은 47%, 청소년과 아동 인구비율은 8% 남짓이었고 그나마 5세 미만의 유아 인구비율은 0.7%에 불과했다. 이 수치들은 이 사회가, 이 국가가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멸망해 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박민호 장관의 바로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있던 김동수 실장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조심스레 목을 가다듬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테스크 포스팀의 김동수 실장입니다. 모두 바쁘시니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회의까지 소개팅 프로그램의 성과와 분석 내용 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만, 오늘 회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고, 어, 그러니까 방안을 마련하는 자리로 준비했습니다.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테이블 중앙에 홀로그램이 생성된다). 미리 보신 자료이겠지만, 거듭 설명드리자면, 2087년 3월 기준, 현재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02입니다. 세계 최저 수준, 유래없는, 각종 수식이 따라붙지만 이 정도면 30년 후에 대한민국 인구는 100만 명 남짓으로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92년 후에는 데이터상, 그러니까 이론상 52명이 남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나마 남아있는 출산 가능한 인구조차 개인적 선호와 기술 의존, 기타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있는 상황이라 출산율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NMP, 즉 국가주도 소개팅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1년간 약 8만 명의 참가자를 매칭했으나, 실제 결혼에 이른 비율은 20%, 그중 출산율은 고작 7%입니다.”

김 실장은 화면에 나타난 통계들을 자신의 디스크로 옮겨와 홀로그램을 확대했다. 곧이어 각 통계 수치의 경향성과 원인, 유사사례, 연구용역의 성과 등에 대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설명을 이어갔다. 그가 말할 때마다 각 부처의 장관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인상을 찌푸렸다.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고, 각자의 얼굴에는, 저마다의 방식대로 그들이 이 상황을 얼마나 절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 실장이 말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자, 박 장관이 운을 떼었다.

“결혼율 20%, 출산율 7%... 이런 숫자로는 절대 회복 불가능하겠군요.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는 분명 소멸할 겁니다. 더 이상 선택지는 없어요. 선택지가 있다는 듯이 훼방 놓는 세력들이야말로 최저 출산율의 원흉일지도 모르죠. 거두절미하고, 조 국장? 이번에 준비한 안을 설명해 보세요.”

조민기 국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 장관을 포함한 주변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짪은 목례를 했다. 그리고 회의실에 잠시 정적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유전자 선택 출생 1세대였던 그는 눈에 띄게 잘생기고 건강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187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서양인 같은 이목구비, 탄력 있고 풍성한 금발의 그는 예고됐던 대로 이번 회의에서 중대 계획을 발표할 유일한 사람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안녕하십니까, 사회혁신부 미래전략국에서 국장을 맡고 있는 조민기라고 합니다. 모두 기다리셨을 테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은 강제적인 출산 정책이 필요합니다. 출산 장려 정책이나 출산을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넛지 제도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강제적인 출산 의무를 국민들에게 지우는 강경책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자발적인 결혼과 출산 장려만으로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국민들의 선택과 자율에 맡겨 두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그의 단호하고 우렁찬 목소리는 회의실 벽에 부딪쳐 공명했다.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일그러졌다. 그간 일부 급진당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이었지만, 실제로 입 밖으로 나왔을 , 이렇게 공식적이고 중대한 자리에서 직접 들었을 때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

"강제적 출산?" 여기저기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제안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극단적인지를 실감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즉각 반박하지는 못했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과 위헌성, 주변국에 대한 이미지 타격,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면적 위반 등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구석에 몰린 쥐의 심정으로 집단의 생존본능을 갈망하는 욕망 앞에서 그것 또한 충분히 논리적인 대안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고양이의 밥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 국장은 그들의 반응을 잠시 살핀 뒤 설명을 계속했다. "지난 백 년간 쌓아 올린 수많은 출산정책들과 더불어 최근 추진했던 제도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인의 영역에 개입하여 결혼 성사율을 높이고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5년간의 성과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무조건적인 주택 지급과 생산수단 평생 보장, 최신형 사이보그 보급, 기타 자녀양육비 전액지원, 차량 무한리스, 그리고 소개팅까지. 21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저출산의 간접적인 원인들을 손 보려 했던 시도들은 모두 허사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과격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제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지점,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직접적으로 조정하는 정책이 필요..."

도보미 복지부 장관이 갑자기 말을 끊으며 테이블을 세게 쾅하고 내리쳤다.  국장을 무섭게 노려보며,

“제정신입니까? 지금 정책조차도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논란에, 논란을 수십 번 반복하고 난 뒤에야 간신히 공론을 이끌어내지 않았나요? 그런데 강제 임신과 출산이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이건 국민들을, 특히 대한민국 여성들을 가축이나 도구쯤으로 취급하는 겁니다! 그 얼마나 대단한 대비책이 나올지 기대하던 참이었는데 정작 이런 얘기나, 아주 기가 막히고 훌륭합니다. 이건 정책이 아니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폭정입니다. 당장 폐기하세요!"


도 장관의 말을 차분히 듣고 있던 박 장관은 예상된 반응이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도 장관을 향해 말했다.


"도 장관님. 진정하세요, 국가의 중대사를 앞두고 감정은 최대한 자제해야죠. 그나저나 도 장관님은 자녀가 몇 명이신가요?"


"네?! 지금 그걸 왜? 박 장관님, 아주 기분이 나쁜데요. 정책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개인의 신상을 물으시다뇨. 아무리 조 국장 편을 들어도 이런 방식은 아니지 않나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도 장관, 도 장관님 흥분하지 마세요. 도 장관님은 개인이기 이전에 국가기관입니다. 대한민국이 멸망해가고 있는데 국가기관으로서 맡은 바 공감하고, 얼마나 책무를 다하고 계신지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예요. 물론, 자녀가 한 명도 안 계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 장관님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상황에서 뾰족한 해결책을 내어놓지 못하신다면, 적어도 회의 안건을 끝까지 경청하셔야 할 소임과,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드린 질문입니다."


박 장관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비난과 비판, 하고 싶은 말들을 기어코 다 하는 스타일이었다. 과거, 소셜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큰 입지를 다진 인물답게 정치적 토론에 한 해서는 물러섬이 없었다. 도 장관은 상기된 얼굴로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발언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만약 당신들, 저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통과시키는 날에는 다들 옷 벗을 줄 아세요! 현지야. 당장 CNN 동북아 지부연락해. 그리고 급한 이니까 30분 이내에 미팅 좀 하자고 ."


장관은 신경질적으로 구둣소리를 내며 함께 온 참모진과 함께 우르르 회의실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갔다. 회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장 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때 장석우 정보통신부 장관이 불쑥 마이크를 켜고 말했다.


"정통부 장석우입니다. 이 회의 위원장 권한대행으로서 말씀드립니다. 강제 출산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지금 미리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본 회의의 내용은 신성한 법률에 따라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도보미 장관은 소정의 약식절차를 거쳐 즉시 위원직에서 해임될 예정이오니 모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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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출산정책의 기본 프레임과 예상효과에 대해 설명을 끝마친 조 국장의 뒤로, 정보통신부 장석우 장관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때 세계적인 이학박사로서 명성을 떨친 슈퍼스타답게 장 장관은 스스로 자부심을 감추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는 때론 고자세로, 때론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들어가며 열정적으로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 설명했다. 십여분이 지나자 회의 분위기는 다시 뜨거워졌다. 대다수가 그의 논리에 압도되어 가고 있었다.


"지난 4개월간 한라가 이룩한 연구 성과입니다. 몇 가지 시스템적 조건만 알맞게 주어지면 인간의 감정을 원하는 방향으로 손쉽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미 2054년, 영국의 왕립학회에서는 감정의 기작에 관여하는 모든 생리현상을 밝혀낸 바 있고, 2061년에는 초지능 사이보그에도 감정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기술은 앞선 기술들과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감정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생성한다는 점에서 기본 원리는 비슷합니다."


회의실에 있는 몇몇 관계자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감정 조작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정책의 수준을 넘어선,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매우 위험한 요소였다. 그 기술이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전제하에 무릇 남용될 경우, 이 땅의 인간 대부분은 노예처럼 살아갈 것이었다. 고위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건가요?"회의 내내 언급을 삼가던 경제부 이유빈 장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얼핏 알기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통제해 보려는 연구들은 그간 아주 많았지만, 피험자들이 겪는 극심한 부작용 때문에 모두 실패했다고 하는데요, 뭐 정신분열증이나 각종 망상장애, 뇌의 일부 기능이 마비되거나, 심한 경우에는 뇌암까지 생겼다면서요."


"물론입니다." 장 장관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기존의 방식들이 컨트롤러였다면, 이번에 한라를 통해 개발한 방식은 창조에 가깝습니다. 이미 소규모 실험을 통해 감정 조정 기술이 어떤 부작용도 없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장 장관은 화면을 넘기며 몇 가지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다. "초지능이 사람의 심리 상태를 추적하고, 그에 맞춰 적절한 신호를 제공하면,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변화하게 됩니다. 이 기술은 심리학과 생리학에 기반을 둔 아주 정밀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순전히 뇌와 신체의 기작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만한 접점은 전혀 없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드리면, 장기이식으로 말씀드려 볼 수 있겠네요. 2040년대 중반까지는 필요한 장기를 타인으로부터 공여받았었죠. 이식받은 후에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했고 간혹 극심한 부작용과 합병증 때문에 사망하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40년대 말엽, 환자의 세포를 추출하여 맞춤형 장기를 배양하고, 또 이식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실패사례조차 나오지 않았죠. 저희가 만든 감정조절 기술도 같은 맥락입니다. 감정을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주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뇌 환경에 걸맞은 심리, 감정을 창조하는 겁니다. 심지어 생각까지도!"


"나도 중간보고를 통해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네만,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게 정말 현실화가 가능하다면 거의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기술 같군요. 재밌네요. 그러면  기술을 현실에 구현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들이 필요해요?" 박 장관이 물었다.


장 장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띠었다. 그는 마치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에게 동전이 없어지는 손가락 마술을 보여주려는 어른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모두를 놀라게 할, 자신이 이룩할 업적을 세상에 빨리 공개하고 싶었다. 그는 꺼두었던 홀로그램을 다시 작동시켰다. 초록빛으로 물들어있는 한반도가 보였다. 그런데 보통의 위성사진과 달리 지역 곳곳에 하얀색 네모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 표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강이라도 짐작할만한 사전정보는 오직 그의 머릿속에만 들어있었다.


"자, 여기 보시는 것은, 이 하얀색 네모들은 전국 각 지에 설치되어 있는 전파발신소입니다. 모두 729기죠. 우리는 이것들을 이용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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