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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재 Jun 10. 2023

욕망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잊고 사는 것이 하나 있다. 욕망은 영원히 가득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욕망을 가득 채울 수 있다고 믿으며 상징과 소유를 쫓다가, 문득 아랫배에 끼워놓은 항아리가 여전히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곤 절망에 빠져버린다. 그렇다고 욕망을 멀리했던 극소수의 현자들처럼 사는 건 더 어렵다. 아주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끊임없는 인정투쟁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타인을 거울삼아 나를 발견하고, 소유로 나를 채워가며, 세상과 분리된 감각을 진실이라 믿는 지금, 우리를 움직이는 건 다름 아닌 욕망이기 때문이다. 욕구, 요구, 욕망의 순으로 나는 점점 바래진다. 탄생의 순간에 가장 영롱하게 빛났던 나는 바람 속의 불씨처럼 세상에 용해된다. 가장 마지막 순간,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더 큰 대척점을 향해 행복의 지렛대를 들어 올린다. 행복을 위해 불행을 자초할 텐가. 아니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금욕을 실천해야 하는가.



욕망은 사실 나쁜 것이 아니다.

 불행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생존전략과 방어기제를 욕망한다. 더 벌고 더 갖고 더 사랑하는 삶에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만든 두려움을 간신히 떼어낸다. 그러나 원하던 삶의 모습을 이루었을 때, 정확하게 말해 원하던 상징을 얻었을 때 세상을 계속 해석해야만 하는 자아는 보란 듯이 또 다른 욕망을 꺼내든다.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한 후 행동하고, 달성하고, 충족하고, 권태를 느끼다가, 다시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쳇바퀴의 동력원이 바로 욕망인 것이다. 욕망은 그 자체로 동기이자 에너지원이고 순수한 형태의 생명현상이다. 욕망에는 진실과 거짓만 있을 뿐 선과 악의 개념은 없다. 나쁜 욕망이 나쁜 이유는 욕망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욕망이 발현되는 관계 안에서 그 행위의 옳고 그름이 더 큰 정의의 잣대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더 힘이 센 신념이 마침 그 행위를 지지한다면, 욕망은 그 순간 긍정적인 현상으로 비칠 것이다. 그래서 욕망을 정확하게 바라보려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이로운 것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 등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직 진실과 거짓의 축 위에서 심심한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지금 이 욕망은 진실일까? 가짜가 아닐까? 불완전한 정신에 속아 완벽함의 모태를 엉뚱한 곳에 두고 있는 건 아닐까? 계속 자문하다 보면 욕망의 껍데기를 두르고 있던 미적지근한 최면들이 서서히 걷힐 것이다.



욕망을 버리면 행복할까?

 쇼펜하우어의 염세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욕망은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지 않고, 더구나 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생명을 지니고 있는 모든 것과 모든 것의 생명은 욕망으로부터 잉태된 것이다. 욕망을 버리는 방법은 생명을 버리거나 생명체가 되지 않기 위해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금욕을 추구한다는 건 자연과는 동떨어진 인위적이고 어색한 이상을 현실에 펼쳐놓으려고 연기하는 일과 같다. 작가(사유의 본질)의 극본(이상)대로 무대 위(현실)에서 멋진 연기(작위)를 관객(자아)에게 선 보인다고 해서 배우의 역할이 배우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욕망을 버리면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다. 금욕을 권장하는 사람은 욕망과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아둔한 사람이다. 진실한 욕망은 세상에 섞이려는 생명 그 자체다. 나와 나의 사이, 나와 타자의 사이, 현재와 미래의 사이에서 욕망의 부작용을 지금 당장 유추하는 일은 멈추어야 한다. 가득 채울 수 없으므로 채우지 않아야 한다, 욕망은 인생을 병들게 한다와 같은 사념적인 접근으로는 욕망의 성질을 이해할 수 없다. 욕망은 굳이 채울 필요가 없다. 부족할 수도 있다. 욕망은 채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산소를 들이쉬고 내쉬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욕망이 덜 채워진다고 하더라도 고통스러울 이유가 없다. 채워짐과 부족함을 인식할 필요가 없다. 가지에서 땅으로 추락하는 나뭇잎이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우연한 자리에 무작위로 착지하듯, 욕망 역시 충동적으로 환경에 반응하는 자연현상이다. 그러므로 욕망을 무조건 채워야 한다는 당위성이야말로 가짜 욕망이다. 욕망을 욕망하게 만드는 가짜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괜히 가만히, 자연스럽게 잘 있는 욕망을 꾸짖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자신의 멍청함을 반성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욕망하는 법을 터득하면 어제 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1. 눈과 귀를 닫고 실존을 느껴본다. 기억, 걱정, 상상을 잠시 멈추고 심장에 집중한다. 심박수가 잘 느껴질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한다. 잘 안 되면 눈을 뜨고 먼 산이나 하얀 벽을 바라보며 본다는 행위에 집중해 본다.

2.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다면 방 청소를 하듯 가지고 있던 욕망들을 정리해 본다. 그 안에 타인의 욕망, 사회의 기호, 인정의 상징, 현실과 상상의 혼동 등이 마구 뒤섞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3. 이제 가벼워졌음을 느껴본다. 진실한 욕망만 남아 있음을 되뇌어본다. 아직도 헷갈리다면 청소를 다시 시작해 본다.

4. 왜 가짜 욕망을 품게 된 것인지 논리적으로 분석해 본다. 왜 그토록 명품을 사고 싶었는지, 그것들을 왜 수집하려고 했는지, 주제넘게 행동한 이유는 무엇인지 고민하며 내 안의 원인들을 탐구해 본다. 연습이 충분히 되었다면 앞으로 얻게 될 가짜 욕망의 부피를 줄일 수 있다.

5. 욕망이 생겼을 때, 욕망이 생겼다는 것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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