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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Feb 28. 2023

그들이 부디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길..

영화 - 세자매

< 세자매, 이승원 감독, 문소리/김선영/장윤주 주연, 2021 대한민국 >


어느 가족의 어둡고도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지켜보게 된 영화로 세 자매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첫째 : 희숙

세 자매 중 혼자만 돌림자를 쓰지 않고 꽃집을 운영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시골의 장녀 캐릭터를 그려내기 위해서인지 한없이 착하다. 누구에게나 속없이 웃고, 부당함에도 참아내고, 거절을 못하며,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남편의 빚까지 갚아나가면서도 오히려 폭력과 외모 비하까지 들으며 사는 어이없는 상황도 아무렇지도 않게 참아낸다. 아니, 참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거기다가 하나밖에 없는 딸은 반항 정도가 아니라 엄마에게 서슴지 않고 욕까지 하고 돈을 착취하기 위해 그나마 엄마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망난이처럼 보인다. 희숙은 암에 걸렸는데도 내색하지 않고 고단한 현실을 살아나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쩔쩔매고 눈치만 보는 그녀가 안쓰럽다 못해 보기 불편하고 왜 저렇게 살아가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둘째 : 미연

세 자매 중 가장 그럴듯하게 살아가고 있다. 신앙심이 깊은 화목한 가정으로 자상한 교수 남편과 남매를 키우며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미연은 현실은 망각한 채 오직 신앙에만 의지하는 지나친 모습을 보이는데, 미연은 신앙심을 앞세워 아이들과 남편을 통제하고 억압하며 살아기고 있으며 남편의 외도까지 목격하게 된다. 친정에서는 둘째임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무능과 막무가내로 살아가는 철없는 여동생, 아픈 남동생, 나이 드신 친정 부모를 혼자서 챙겨나가고 있었다. 가장 멀쩡한 듯 보였으나 미연의 내면은 속이 썩어 들어가는 인물이다.


셋째 : 미옥

연극 극단의 작가로 아이가 있는 남편과 재혼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데, 엄마 역할도 아내 역할도 변변히 할 줄 모른다. 다른 가정이었으면 진작에 파탄 났을 것 같은 가정이지만, 그나마 다행히 남편과 아들이 착한 성품을 지녀서 나름 화목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 미옥은 술과 과자를 좋아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며 즉흥적이다. 둘째 언니 미연에게 수시로 의미 없이 전화를 하며 술주정과 하소연을 쏟아내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한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 세 자매의 삶은 모두 저마다 위태롭고 힘겨워 보인다.

아주 오래전 집필된 공지영 작가의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거라>에 나오는 세 친구들과 겹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슬픈 건 이십 년도 더 된 베스트셀러의 내용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영화 속 세 자매의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고 답답하다.


어느 날 세 자매는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고향으로 찾아간다. 그 고향에서 각자의 기억을 조합하며 그녀들의 불안전하고도 불행한 삶의 근원을 따라가 보게 되면서 비로소 세 자매의 삶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목사님까지 초대한 아버지의 생신날 이 가족은 곪았던 갈등이 터져 나오며 막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교회 장로인 아버지는 젊은 날 바람을 수시로 피우고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키웠고, 가족들에게 폭력과 학대를 일삼으며 살아왔다. 그런 위태로운 가정은 신앙의 힘으로 용서와 화합을 강요하며, 서로 마치 아무 일이 없는 듯 지금껏 덮고 감추며 살아왔지만 모두의 가슴속에 그 기억과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사과를 하라는 다 큰 자식들의 울부짖음에도 아버지는 사과 대신 창문에 머리를 박으며 기어코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집안의 가장 악의 근원인 아버지는 거짓 신앙심으로 인해 마치 자신이 죄 많은 자식들을 대신해서 피 흘리는 예수라도 된 것인 양 십자가를 짊어진 가장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났다. 아버지를 보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깊은 절망을 느끼게 되었다. 어릴 적 봉합되지 않은 상처는 현재의 그녀들에게 너덜너덜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잘못된 일을 바로 잡지 못하고, 그녀들 역시 그렇게 싫었던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가족 전체의 비극으로 느껴진다.


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릴 적 기억과 마주한 그녀들은 이 아픈 기억을 씻어내고 싶은 사람들처럼 언젠가 좋았던 바닷가에서의 기억을 찾아 떠난다. 그녀들의 현실은 앞으로도 딱히 나아질 것 없어 보이지만, 모처럼 바다에서 환히 웃는 세 자매의 마지막 장면 속으로 이소라의 멋진 노래가 울려 퍼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녀들이 힘내서 다시 살아가도록 조심스럽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라고 응원하고 싶어 진다. 어린 시절 그 끔찍한 기억 속의 그녀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그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길 바라본다. 배우들의 열연에 현실인 양 몰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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