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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May 21. 2023

사기꾼끼리 동업을 하면 벌어지는 일

영화 - 샤퍼

< 샤퍼, 줄리안 무어/ 저스티스 스미스 주연, 2023년 미국, 스릴러 드라마 >


애플 TV 구독권을 받고 한 동안 이용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이제야 부랴부랴 보게 된 영화였다. 줄리안 무어가 나오는 뉴욕 배경의 영화라기에 자연스럽게 영화 감상을 결정했다.


뉴욕의 화려함과 어두운 단면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 펜트하우스와 할렘가의 신분적 계층, 문화의 차이를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배치했다.

스릴러 장르에 가까운 영화로 사기와 반전이 큰 축을 이루며 또 다른 주제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별로 그 스토리를 끌고 나가며 영화 전체를 완성해 나가는 연출 기법을 보여주었다.


1. 산드라

어려서부터 마약과 각종 범죄 행위를 하며 빈민가에서 자란 전과자이다. 어느 날 우연히 낯선 남자로부터 사기에 가담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 남자에게 철저히 훈련을 받은 산드라는 모든 것이 거짓이지만 매력적인 명문대생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희생물을 정하여 작전을 펼친다. 이 영화에 관한 기본 정보도 없이 봤더라면 하마터면 산드라에게 철저히 속을 뻔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냈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여대생이 어느 날 우연히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진실한 사랑에서 삶의 전환점과 목표를 찾아가는 그럴싸한 여자같이 보였다.


2. 톰

서점을 운영하며 지내는 젊은 청년이다. 어느 날 서점에 책을 사러 온 뉴욕의 여대생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첫 데이트 때 그녀는 자신의 삶이 제인에어 같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솔직하게 얘기한다. 톰은 그녀를 데리고 서점에 가서 자신이 소장한 소설 <제인에어>의 초판을 선물하고 이들은 운명적인 끌림을 느끼며 깊은 사랑에 빠진다. 톰은 아버지와 그리고, 새어머니와 함께 산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여러 가지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어했고, 산드라와의 사랑으로 인해 마침내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이런 톰에게 그녀는 거액의 사기를 치고 잠적해 버린다.


3. 매들린

뉴욕의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톰의 아버지와 결혼하여 그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 부잣집 사모님이다. 내가 좋아하는 줄리안 무어가 이 역할을 맡았는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기꾼 중 가장 욕심이 지나친 인물이다. 그녀가 적당한 야망을 가졌다면 그녀는 거액의 돈을 갈취하고도 걸리지 않은 전지적인 사기꾼이 되었을 것이다. 뉴욕 헤지펀드 전문가의 마음을 사로잡고 정식 결혼을 통해 그의 사후 유산의 대부분을 상속받았다. 사기꾼들은 사람의 진실된 마음인 사랑을 훔쳤기에 아버지와 아들에게 쉽게 사기를 칠 수 있었고 그들이 부전자전이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이런 류의 사기꾼들은 그들에겐 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사랑'을 천박하게 '돈'으로 환원하여 사라지기에, 피해자에겐 돈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를 잃게 만드는 악랄한 인간들이다.


4. 맥스

매들린과 동업 관계인 두 사람은 사랑까지 빙자한 좋은 파트너이다. 일도, 사랑도 죽이 척척 맞아나간다고 생각하던 맥스는 매들린에게 뒤통수를 맞고 사라진다. 매들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마약에 찌든 산드라를 영입하여 그녀를 철저하게 교육시킨다. 사기의 훈련, 사전 연습, 실전 등을 보여주는 숙련된 일타 강사 같았다. 이런 일타 강사가 사기를 당한다니 꼴이 말이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5. 톰의 아버지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로 평생을 모은 거대한 재산을 속아서 전부 사기꾼에게 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을 때까지 그녀의 사기를 사랑으로 알고 세상을 떠난다. 뉴욕의 금융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 치고는 여자 보는 눈이 너무 허술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에 대한 믿음 또한 부족했다. 자신의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으나 톰의 나약한 성격을 알고 서점을 차려준다. 그리고, 사랑에 눈이 먼 나머지 아들이 아닌 사기꾼에게 유산을 남기는 어리숙함을 보였다.

톰에게 갖고 싶은 것을 말하라 했을 때 톰은 <제인 에어>의 초판이 갖고 싶다고 했고, 그 말을 듣고 톰의 그릇이 작다는 것에 실망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나서 톰이 산드라에게 운명을 느낀 장면이 생각나서 소름이 돋았다. 사기꾼들은 이런 세밀한 사항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이용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 못마땅한 아들이 당신의 사후에 이 모든 것을 돌려놓을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눈을 감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누가 누가 사기를 잘 치냐

누가 누가 호구인가

게임을 다룬 영화 같았다.


사기꾼 사관학교 교수가 오히려 사기 피해자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는 장면에서는 영화의 허술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 반전에 반전을 더해나가는데 가장 마지막 반전 외에는 큰 충격은 없었던 것 같다.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들을 보면 어찌 그리 어리숙할 수 있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그리 거액의 사기를 당한 기반에는 "진실된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진실, 사랑과 돈을 맞바꾸는 샤퍼의 기질을 제대로 발휘하면, 피해자는 피해를 당하는 것을 오랫동안 인지조차 못하기도 하고 심지어 피해 사실을 알고 나서도 한동안 믿지 못하는 참극이 벌어진다.


영화 속에서 계속 속고 속이는 연속의 흐름을 보다 보니, 마지막 사필귀정 권선징악 같은 결말이 과연 끝인지 믿기가 힘들었다. 산드라는 과연 회개하고 진실한 사랑을 시작한 건가?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왠지 영화가 끝나지 않은 불길하고도 찜찜한 기분으로 엔딩을 맞았다. 스릴러를 급하게 로맨스 영화로 끝맺음 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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