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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Jan 21. 2024

요리로 무병장수를 빌다

팥찰밥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다

경상도에서는 생일상에 팥찰밥을 올린다고 한다. 예전엔 그 문화가 생소하고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고, 같은 나라에서 이런 다른 풍습이 있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정성스러운 생일상차림은 갓 지은 따뜻한 밥, 소고기 미역국, 잡채, 갈비찜, 불고기, 각종 나물 등이다. 경상도의 문화는 아마도 팥찰밥과 조기, 미역국, 나물이 필수인 것 같다.


< 팥찰밥의 정성과 의미 >

작년 한 해는 유독 생과 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큰 일들이 있었다. 때론 힘들고 혼란스러워져 혼자서 산에 가보기도 했고, 이 시간을 통해 명상을 조금씩 배워나갈 수 있었다. 나의 삶에 대해 돌아보기도 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그 많은 생각 끝 한편으로 어쩌면, 지금 아무리 미래를 준비하고 노력한다 해도 알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지는 것에 대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올해 처음 만들어 보는 팥찰밥이었다. 예년과 다른 기분으로 더 정성스럽게 새벽밥을 지어보았다.

다 만들고 나니 마치 수수팥떡 케이크 같은 자태가 곱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팥을 더 많이 넣었더니 뭔가 풍성한 느낌이었다.


옛 어른들은 아기 백일 때 수수팥떡을 만들어 돌렸다고 한다.

팥찰밥과 수수팥떡 결국은 모두 사랑일 것이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정성과 바람이다. 특정 음식으로 지방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그 기원은 동일한 것 같다.

누군가는 미신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한 때 나 역시 이런 음식을 통한 기원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든다. 때론 너무 힘들어서, 또는 간절한 바람으로 이렇게라도 의지하고 정성을 쏟을 마음이 필요했던 것 같다. 꼭 음식이 아니더라도, 각자 간절히 염원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 마음이 귀한 것 같다. 어쩌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이 정성이 스며들길 기원하는 의식 같다. "무병장수"라는 인간의 가장 큰 욕심을 조심스럽게 포장하여 신에게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팥찰밥 하나를 지으며 유난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본다.


< 인간의 욕심 >

어디선가 본 내용이 생각난다.

인간의 삶은 버스를 타고 가는 여정과 같다는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내 뜻대로 해석해 보게 된다.

버스에 타고 있으면 누군가가 타고 내린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고, 누군지조차 모른 채 가기도 한다. 때론 목적지까지 함께 하고픈 이도 생길 것이다. 뜻하지 않게 종점까지 가서야 함께 내릴 수도 있다. 더 이상 동행하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이 같은 버스를 타고 갈런지도 모른다. 때론 상대가 빨리 내리길 바라보기도 하고, 그 상대 또한 내가 불편할 수 있을 거다.

이처럼 이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것이 인생사의 인연과 닮은 것 같다.

그 버스 또한 내 소유가 아니다. 그저 인생의 여정을 같은 시간에 함께 한 것뿐이다.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탄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세상에 소풍 와서 만났을 뿐이다.


언젠가 하나 둘 버스에서 내리고 나만 덩그라니 앉아 갈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떠나보내고 그들만 남겨질 수도 있다. 세상에 소풍와서 누군가와는 행복한 소통을 하며 다른 사람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동행하기를 바라는 인연이 있다. 이 간절함이 언젠가 이별을 할 때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뒤로한 채...


작년 한 해 산 길을 걸으며 결국 내가 얻었던 깨달음은...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루하루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론, 힘들고 아픈 날이라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이런 마음을 담아 팥찰밥을 만들어 본다 >

1. 팥준비와 삶기

새벽 일찍 일어나, 전날 불려둔 유기농 팥을 삶는다.

팥이 충분히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소금을 한 작은 스푼 정도 넣어 삶는다. 어차피, 찹쌀과 함께 또 밥을 할 거라서 팥을 무를 정도로 삶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적당히 익혀야 좋다. 찹쌀 위 얹히는 팥은 쪄진다는 개념으로 여기면 되고, 주의점은 팥물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2. 찹쌀 불리기와 씻기

생일이기에 특별한 마음을 담아 유기농 찹쌀을 준비한다. 이 찹쌀을 적어도 30여분 이상 불린다.

찹쌀과 삶아둔 팥을 함께 솥에 담는다.


3. 물의 양

팥찰밥의 가장 주의할 점은 물의 양이다.

처음부터 찹쌀과 팥은 불리기 전의 분량을 미리 계량해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밥솥 계량컵을 기준으로 찹쌀 두 컵과 팥 두 컵일 때, 이는 잡곡 네 컵으로 생각한 후 불려야 한다. 불리고 난 후 물의 양을 예측하기 쉽지 않기에 미리 이 계산을 해두면 좋다. 단, 잡곡밥의 물양보다는 좀 적게 측정한다. 찰밥이 너무 물러지는 것은 내 취향은 아니다.

이때 팥을 삶은 물을 사용하면 찹쌀까지 고운 빛으로 물들어진다. 팥물의 양으로 부족한 것은 생수로 보충하고 약간의 소금 간을 해도 된다.

이렇게 정성껏 팥찰밥이 완성된다.

팥찰밥을 만들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욕심을 감히 바라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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