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떡국을 꾸미로 만들어보다
설 명절이다. 어렸을 적, 친척들이 모두 모여 북적거렸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른들이 음식을 만드시고, 그 풍성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모여서 세배를 하고, 덕담과 세뱃돈을 받고, 맛난 음식들을 함께 먹던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할머니 댁에 가고 싶었고, 하루라도 더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마음이 떠오른다. 아니, 할머니 댁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어느덧, 음식을 장만하고 세뱃돈을 준비하는 입장이 되어버린지 꽤 되었다. 입장이 바뀌어서인지 어릴 적 그 설렘, 기다림, 신남, 반가움 등의 마음이 줄어든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읽으면서 내가 나이가 들었음을 깨닫곤 한다.
올해는 여러 가지 사정상 조촐한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조촐함과 단조로움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설날의 의식을 치르고픈 마음에 떡국을 끓였다.
이제는 떡국을 먹고 한 살을 더 먹는 것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전 국민이 새해 떡국과 함께 일제히 한 살을 먹던 시절과 달리 올해부터는 각자의 생일에 한 살씩 나이가 늘어나는 첫 해가 되었다.
떡국은 집집마다 끓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이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지금의 방식으로 끓일 생각이다. 꾸미라는 요물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정성껏 햅쌀을 방앗간에 맡겨 가래떡을 뽑고, 그걸 꾸덕하게 말려 일일이 썰어서 떡국을 만드시기도 했다. 주로 음식을 할 때 그 시절 엄마들이 참으로 위대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꾸미를 활용한 떡국 요리법 >
1. 국산쌀 100% 떡국떡을 물에 한 시간 정도 불린다.
2. 떡이 불려지는 동안 꾸미를 준비한다. 이 꾸미는 경상도 음식 문화라 한다. 꾸미 또한 각자 집안의 취향이 있을 것이다. 난 소고기와 생굴로 꾸미를 만든다.
3. 잘게 자른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아준다. 이때 약간의 소금, 후추로 볶다가 진강장을 자작하게 넣고 볶는다. 처음엔 간장을 많이 넣었는데 이리 하니 떡국 국물이 너무 검게 되어, 요즘은 간장의 양을 줄였다. 쇠고기를 잘게 다져보기도 했는데, 이 방식은 고명 같은 느낌이 더 들길래 요즘은 국거리용 크기를 선호하게 되었다.
4. 생굴을 깨끗이 씻어 이것 또한 참기름에 볶는다. 그리고, 이 때는 진간장을 조금 넉넉하게 준비하여 살짝 끓여낸다. 너무 많이 끓이면 식감이 질겨진다. 굴은 가급적 크기가 작은 것이 나은 것 같다.
5. 계란 지단을 준비한다. 정성껏 만들고자 한다면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하여 준비해 두면 좋을 것 같다. 난 그냥 섞어서 두껍게 부친 후 채 썰었다.
6. 냄비에 물을 끓인 후, 불린 떡국떡을 넣고 끓인다.
7. 어느 정도 끓여졌을 때, 쇠고기 꾸미를 적당히 넣어준다. 간은 항상 처음엔 약하게 하고 맛을 보면서 더 첨가하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방법이다.
8. 떡이 충분히 끓어서 떠오르면, 굴 꾸미를 넣고 간을 본다. 굴은 살짝만 더 끓여주는 것이 식감에 좋다.
9. 그릇에 떡국을 담는다. 고명으로 준비한 지단과 김가루를 얹는다. 간을 맞출 겸 편하게 김자반을 넣는데, 어른들은 좋은 김을 구워서 비닐봉지에 담아 부셔서 고명을 준비해 두셨던 기억이 난다.
< 응용 버전 >
1. 굴을 굳이 꾸미로 만들지 않더라도, 쇠고기 꾸미로 간을 하고 생굴을 넣어도 또 다른 별미가 될 것 같다.
2. 쇠고기와 굴이 아닌 다른 꾸미들을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표고버섯이나, 두부 등을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3. 간장으로 만든 꾸미를 활용하다 보니 소금 간을 따로 안 해서 좋긴 하지만, 국물 색이 까만 것이 신경 쓰이긴 한다. 꾸미의 간장 양을 줄이든지, 사골국을 국물로 사용해도 좋을 것 같다.
4. 꾸미를 만들어두면 한 동안은 라면보다 간편한 떡국이나 떡만둣국을 만들 수 있다.
꾸미라는 말을 근래에 처음 접했다. 그런데, 이걸 알고 나니 요리가 한결 편하면서도 뭔가 고급스러워지는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지만 지혜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떡국을 만드는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새해의 의미를 기리는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다. 이제는 떡국을 먹고 한 살 나이가 들진 않지만 서로의 안녕과 건강, 행복을 기원해 준다는 것이 새해의 진정한 맛과 멋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보니 떡국 한 그릇의 귀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