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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Mar 29. 2023

논문을 쓰고 싶었다

논문 대체


"대체 왜 대학원에 가고 싶었을까?"


요일 밤 10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한적한 1호선에 앉아 엉덩이로 철길의 물결이 흐르면 어김없이 같은 질문이 날아든다.


5학기. 예정대로라면 논문을 써야할 시기. 나는 '논문 대체' 수업을 듣고 있다. 동기 중 몇이나 논문을 썼을까?야간대학원을 다니는 사람 중에 몇이나 논문을 썼을까? 일반대학원이면 달랐을까?


4년전, 대학원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내게는 "대학원=논문"이었다. 일요일 오전마다 2시간씩 카페에서 책을 보던 내게 아내는 말했었다. 그럴거면 논문을 .



"서른에 네가 갔으니, 마흔엔 내가 갈께"


마침 녀석이 10년전쯤 로스쿨에 갈 때 받아놓은 약속이 생각났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 쓸모없는 학문을 하고팠다. 하지만 국제인도주의단체 2년차였던 나는 비영리, NGO, 시민사회, 소셜섹터, 국제협력 등에 대한 갈증이 이미  부글부글한 상태였다.


일과 병행하고 싶었기에 처음부터 야간대학원을 생각했다. 한양대, 성공회대, 경희대를 염두에 두었는데 당시 "글로벌"에 대한 내적 키워드가 하늘을 찌를 때라 결국 경희대 공공대학원 글로벌거버넌스학과에 지원했다.


당시엔 꽤나 자신만만했던 걸로 기억한다. 글로벌 기업 경험에 글로벌 NGO 한국지부 세팅 초기 단계니, 뭐 다 잡아먹을 기세였다. 연구 계획에도 해외 인도적 위기 발생시 현지에서 국제협력 진행 경로와 그 가운데 민간 NGO의 어떤 역할을 살피...(이하 생략 ㅎㅎ)



내게 대학원이란 무엇이었을까?


왜 논문을 쓰려했을까. 돌아보면 나는 솔직히 논문을 커리어 돌파용으로 사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공이나 대학원엔 순수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논문은 애초에 냄새가 배어있었다.


초기 3-4학기까지 고민했던 키워드는 #아일랜드 #기근 #공공외교 #외교아젠다 등이었다. 절반은 단체를 알리고 싶다는 편협함, 절반은 정부나 국제기구에 어필하고 싶다는 야심이 녹아있는 키워드들이다. (+ 논문쓰며 내게도 신념과 책임이 자라기를 소망 한스푼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나는 이직을 했다. 대학원에서 길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석사 과정이 커리어에 도움을 준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일터는 글로벌거버넌스와는 한참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1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다시 대학원에 복학했다.


어제 이동수 교수님은 오이디푸스 강의를 통해 인간은 "집없이 헤매는 존재"라고 귀뜸해주셨다. 오늘 김정숙 교수님은 명상 강의를 통해 "마음은 떠돌아 다니는 거예요. 그러니 그래도 괜찮아요."라고 다독여주셨다.


그 말씀들에 기대어 남은 12주간, 두번째 스무살의 야간대학원 방황을 찬찬히 복기해보려한다.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와 그의 딸 안티고네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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