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을 브런치에 쓰는게 좋을지 한참 고민하고 씁니다. SNS는 아닌거 같고 블로그도 없으니 딱히 쓸 곳이 없네요.
저희 집 꼬맹이는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사립초는 생각지도 않았지만 다음 선택지로 혁신초와 공립초가 또있더군요. 물론 집주소로 이미 배정이 완료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고민스러웠습니다.
1년이 지났고 결과적으로 저희 부부는 혁신초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브런치를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봉숭아물
1학기가 끝날 무렵, 퇴근했더니 녀석의 손끝에봉숭아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6학년 언니 오빠들이 방문해 1학년 동생들의 손톱에 물을 들여주었다고 하더군요. 녀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늦가을까지 물든 손톱을 소중히 했습니다.봉숭아물이 짧아질수록 1학기 내내 "학교 가기싫어" 하던 녀석의마음은학교에스며들었습니다.
고학년 선배가 후배를 챙기는 문화는 생활 곳곳에 있었습니다. 축제 때에는4-6학년들이 반 마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저학년이 방문했으며, 고학년이 지은 쌀농사를 거두어 저학년이 가래떡을 들고 오는 식이었습니다.혁신초는 선생님들은 물론, 학생들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장터
두 번의 장터에 참여했습니다.처음에는 꼬맹이 기 한번 살려주자 하고 참여했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래서 가을 장터는 참여하지 않으려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꼬맹이 사례를 칭찬하며 학생들 참여를 독려하자 녀석은 반 친구들과 입을 맞춰 장터를 강행해습니다. 결과는 또이또이했지만 녀석은 더 적극적인 쇼퍼로 거듭났죠.
연말에 반에서 세번째 작은 장터가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학급 친구들끼리 100-200원에 장난감을 주고 받는 시장 놀이였죠. 그 다음이 진미입니다. 그렇게 시장에 풀린 돈을 모아서는 주민자치센터를 찾아가 기부를 하더군요. 제 돈이 들어가 있어 꼬치꼬치 물었지만, 녀석은 그저 '이웃'을 도왔다며 웃을뿐이었습니다. 친구들의, 학교의 장터가 이웃으로 전해지는 즐거운 순환이었습니다.
#OO의책
1학기부터 거르지 않고 하는 숙제가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잠자기 전에 부모님과 책읽기였습니다. 초기엔 부모가 자녀에게 읽어주었는데, 후반에는 역으로 바뀌었죠. 책을 읽고 자신의 독서노트에 적어가면 담임선생님이 확인하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녀석은 그 숙제를 주말 빼곤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거기까지인줄 알았는데 12월말에 웬 봉투를 가져와서는흔들며 자랑했습니다. 거꾸로 쏟으니 땅콩이 쏟아졌죠. 책 읽기 숙제해갈 때마다 땅콩이 쌓이고, 자기가 가장 많이 받았다며 으쓱하더군요. 방학에 들어갔지만 녀석은 여전히 잠자기 전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옛날이야기에서 위인전을 지나 자연과학책을 읽고 있네요. 덕분에 부모인 저희도 상식이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ㅎㅎ
코로나19 기간에 유치원에 입학해야했던 녀석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마스크와 불규칙한수업 운영이 한 몫했죠.그래서 초등학교 입학 초기에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필 3월에 온 가족이 코로나19에 걸려 열흘간 결석도 했죠.
팬데믹이 없는 정상적(?)인 시국이라면 공부 안시킨다며 손 가락 하나를 보탰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안전과 건강조차 보장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다보니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