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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Apr 15. 2022

기업은 죽어서 무엇을 남길수 있을까

기업재단 출근 - 한달


기업재단에 출근한지 한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3월부터 출근했지만 코로나 자가격리를 제외하면 거의 한달입니다. (출근하고 확진되서 정말 다행 다행입니다 ㅠㅠ)


처음 몇 주간은 출근길의 변화가 가장 낯설었습니다. 출근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던 삶에서 9to6의 삶으로 변했고, 3-6호선에서 3-1호선으로 지하철 노선도가 바뀌었습니다. 여유롭게 책을 읽던 출근길은 빼곡한 인파 속에서 음악을 듣는 길로 바뀌었습니다.


일하는 공간도 바뀌었습니다. 영문 메시지가 새겨진 화이트톤 공간에서 일하던 20여명의 조직에서, 창업주 흉상이 있는 높은 천장의 묵직한 공간에서 6명의 소수정예로 일하고 있습니다. 공간은 정직합니다. 입구는 한때 재계 2위의 풍채로 맞이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을 입고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대화 소재도 바뀌었습니다. 국제문제와 새로운 카페 이야기에서 학술사업과 저녁 술자리 이야기로 옮겨졌습니다. 단체의 평균연령이 확 높아졌는데 이 점이 재미있습니다. 2030이 많은 단체에서는 본의아니게 어른 행새를 해야하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이 곳에서는 제 나이에 맞게 말할 수 있어 오히려 편하기도 합니다.



40년전 설립 초기 기록의 울림


첫 한달,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서 단체 히스토리를 파악했습니다. 다행히 설립 초기 10년사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자가격리 중에도 틈틈히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선배들은 재단이 설립된 1978년도에서 1990년 사이에 진행된 초기의 상황들을 사진과 숫자를 버무려 잘 기록해두고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업 출범 당시의 연구보고서들이었습니다. 하나는 학술사업에 착수할 당시의 <사업기획연구보고서>(1981)였고, 다른 하나는 보건의료사업의 <낙도(완도대우병원)의 의료현황에 대한 연구분석>(1981)이었습니다. 인도주의단체는 초기에 연구보고서 같은 접근은 없었습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도적 사건에 대한 외침과 대응 활동이 있었죠. 그것은 뜨겁고 영웅적이었다면, 이것은 차갑고 분석적이었습니다.


차갑고 분석적인 연구보고서에서 출발한 사업들은 40년이라는 시간동안 이런저런 부침속에서도 훌륭히 제 역할을 수행해주었습니다. 각 사업들은 실태 분석에서 출발해 이상적인 목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식과 정신은 40년을 넘어 처음 재단에 발을 들여놓은 제게도 묵직하게 전달되었습니다.



기업은 죽어서 무엇을 남길수 있을까


한 달의 생각을 담아 커뮤니케이션 플랜을 작성하고, 어제 최종 컨펌을 받았습니다. 돌아보면 플래닝 작업은 늘 신기합니다. 플랜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동료-상사와 대화하며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최종 보고를 통해 리더와 클로징컷 그림을 공유하고 생각지도 못한 피드백을 듣는 것은 꽤 짜릿합니다. 좋은 플래닝 작업은 더 나은 대화를 촉진하는 내부 소통 작업인것 같습니다.


세번째 이직이다 보니 저도 제 나름으로 조직을 평가합니다. 그 첫번째 관문은 "이 조직은 새로운 경력자의 낯선 눈과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커뮤니케이션 플랜은 아주 적합한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그 작업을 즐겁게 완수할 수 있어 저 역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입사하기 전, 면접 때 마지막의 마지막의 순간에 감히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업은 죽어서 무엇을 남길 수 있습니까?" 그룹이 해체되어 더이상 기업재단이라고 부를 수 없는 독립재단의 사무국장님께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당돌한 제 질문에 국장님이 눈을 반짝이며 답을 주셨고, 그 답이 맴돌고 맴돌아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만의 답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 질문을 품고 재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기 쓰듯 종종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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