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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그린 Mar 28. 2021

내가 느꼈던 패배감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간절히 원하던 직장에 드디어 합격했다.



나는 외고 진학을 실패하게 되면서 나의 첫 "실패"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특목고 진학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고등학교 3학년을 온전히 입시에 매진하며 살았었다. 급식실에 갈 때도 내 손에는 단어장이 있었고, 학교 열람실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불끄고 나가는 사람은 나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정시 추가합격으로 겨우겨우 나의 5지망쯤 되던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나에게 "너는 안될것"이라고 외치며 나를 비웃던 사람들이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고, 외고 입시에도 실패하고 원하는 대학 입시에도 결국 실패해버린 내 자신이 진정한 루저처럼 느껴졌다. 

대학이, 사회가, 인생이 원망스러웠다. 때마침 첫사랑이었던 아련한 나의 전남자친구가 나를 뻥 차버리면서 난생 처음 겪어보는 끔찍한 실연의 아픔과 입시 실패의 좌절감으로 인해 괴롭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큰 기대없이 쓴 수시 원서가 (또다시 추가합격으로) 붙게 되면서 나는 내가 원하던 학교에 결국 들어갈 수 있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엉엉 울어버렸던 그 순간도 잠시, 나는 애교심에 젖게 되며 내가 느꼈던 패배감을 금방 잊어버렸다. 


나는 스스로에게 얘기했다. 

너는 노력을 해서 네가 원하는 대학교를 갔고, 처음에는 실패하였지만 "조금 더" 노력을 하여 결국 성공하였다고. 그러니 노력을 해서 이룰 수 없는 것은 없다고. 그리고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이 동일한 로직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시키게 되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실패를 "노력의 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또다시 나는 취업이라는 관문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남짓한 시간만 견뎌내야 했던 입시 실패와는 달리, 취업에서의 좌절의 늪은 꽤 오랜 시간동안 계속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치열히 노력했는데, 내가 원하던 곳을 결국 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또 한번 고통을 겪어내야 했다. 


조금 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굉장히 목표 지향적이었던 나는 깊고, 어둡고, 축축한 패배감의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내가 노력을 해도 빠져나오기 힘든 사회의 늪 말이다. 


그 당시 내가 소셜미디어에 남겼던 글이다. 


최근 내가 겪은 취업 과정으로 인해 나는 내가 이때까지 누려온 수많은 혜택과 기회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나의 노력으로 성취하였다고 생각하였던 것들이 사실은 너무나도 쉽게 성취되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을 한다고 항상 성과가 따르는 건 아니다. 삶은 때로는 그저 불공평할 뿐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훨씬 감사하게 되었다. 취업 준비생들, 이직러들, 학교 지원자들,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예술가들, 창업가들이 겪고 있을 감정에 많은 공감이 된다. 과거에 자만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내가 한 직장에 소속되게 되면서 현재 직장이 나의 능력을, 나의 가능성을, 나의 역량을 규정짓는 잣대가 되어 이전과 똑같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늪에 빠진 기분이다. 아무리 헤엄쳐 나오려고 해도 더 깊이 빠지는 것 같은 늪. 한발차로 들어오게 된 직장인데 이제는 이 직장이 나를 정의하게 된 전부가 된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직장이 속한 계급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현재 나에게 가장 중요한 진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고 있어 내 인생이 통째로 대기 상태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커리어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괴로운 느낌이다. 지금이라도 새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답답하고, 슬프고, 왠지 모르게 자꾸만 억울하다.


나는 노력을 정말 많이 한다고 해도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나는 정말 어렵게 내가 원하던 직장에 가게 되었지만, 이 성취가 온전히 노력의 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모르는 상황 가운데 나에게 주어진 무수히 많은 기회들과 노력이 결합되어 정말 어렵사리 만들어진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과거에 느꼈던 패배감을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사회가 꿈과 희망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지를, 그게 경쟁사회의 필연적 특징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하고자 하는 것은 이타적인 결정이라기 보다는 몇년간 힘들어하고 좌절했던 과거의 내 자신에게 정의를 구현해주기 위함이다. 내가 힘들었던 만큼, 그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그때 내가 겪었던 인생의 쓰린 경험이 비로소 의미를 찾게되지 않을까하는 뭐 그런 생각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겪는 실패를 "노력의 부족"으로 재단해버리는 폭력적인 판단을 하기 이전에 그가 겪었을 삶의 아픔과 좌절감과 쓰림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포용적인 사람이 되기 위함이다. 그래서 아직은 패배의 아픔이 기억속에 선명할 때 이 글을 쓴다. 




혹시 나와 같은 좌절감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회가 규정해놓은 기준으로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당신의 인생은 충분히 가치있으며,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만큼 강력한 임파워먼트 방식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어쩌면 과거의 나보다도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을 많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또는 만족하지 못하는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고 있는 당신들에게 진정을 담아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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