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거의 이틀에 한번씩 할머니들에게 전화를 건다. 10-20분은 엄마의 친정 엄마, 외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그 이후의 10-20분은 아빠의 엄마, 친할머니와 통화를 한다.
열린 방문 사이로 들려오는 엄마의 통화 소리를 들으며 문득 할머니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다.
외할머니는 6.25 전쟁 시절에 대해 종종 얘기한다. 식구가 많았던 할머니네 가족은 당시 할머니가 어떤 일시적인 질병 때문에 몸이 아프자 버리고 피난에 가려고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여러번 할만큼 전쟁통에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던 기억이 어린 할머니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었나 보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하여 싱글맘으로 우리 엄마와 엄마의 남동생을 키웠다. 그래서인지 어릴적 봤던 젊은 시절의 할머니는 참 생활력이 강하고, 독립적이고, 항상 씩씩한 모습이었다. 어릴적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곳 근처에는 직접 재배하시는 밭이 있었는데, 거기서 쑥도 키우고 봄동도 키우셔서 밭에서 직접 호미로 캐오시곤 하였다. 할머니는 운전을 잘했다. 70대 초반까지 직접 운전하여 이곳저곳을 다니셨다. 할머니는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걸 좋아하고 정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항상 친구가 많았고, 운전해서 전국 곳곳에 계신 친구 분들을 만나러 가곤 하셨다.
항상 씩씩했던 할머니가 섬세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지금 거주하고 계시는 실버 타운과 유사한 단체 거주 시설로 옮기셨을 때이다. 유독 엄마와 통화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나한테도 자주 연락을 먼저 하셨다. 생각보다 실버 타운에서의 생활에 고충이 많은 모양이었다. 항상 친구가 많은 할머니였지만 그곳에서의 할머니들과의 생활에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호기심이 많아 세계 여러 곳을 다니셨다. 엄마와 외삼촌이 가정을 이룬 다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이곳저곳에 있는 친구 분들을 만나러 가곤 했다.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던 할머니가 실버 타운의 작은 방에서 지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할머니가 된다는 건 그러한 삶의 방식 또는 거주 환경의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친할머니는 항상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멀리 떨어져 살아 외할머니만큼 자주 보지는 않았지만, 볼때마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들 왔어?" 라고 하며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가득한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시고는 했다. 할머니가 사시는 곳은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바닷가여서 나는 친할머니 집만 가면 항상 맛있는 해산물을 배터지게 먹곤 했다. 할머니가 가장 잘하시는 음식은 양념게장과 매운탕이었다.
할머니는 젊었을 적 식당을 운영하셨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허리나 관절이 많이 안 좋으시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그 시대의 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모든 집안일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한번도 할머니의 집안일을 도와준 적이 없다고, 항상 모든 고생은 할머니 몫이었다고 한탄하시고는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는 많이 외로워 보였다.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로 생활하시는 것을 걱정한 자식들이 할머니에게 형제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오는 것을 권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거절하셨다. 할머니에게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소중하시다고 했다. 장보러 나가면 할머니를 알아보고 반겨주는 동네 사람들, 몇십년간 눈도장을 찍은 가게 상인들, 길 잃을 걱정없이 낯익은 거리의 풍경, 이런 것이 할머니에게는 중요하다고 했다.
할머니가 되면, 익숙한 것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전쟁 이후 폐허가 됐던 나라, 그리고 여러 역사의 장면들을 직접 경험했다. 몇십년만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것도 목격했다. 하루 아침에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기고, 네이바인지 나발인지에 뭐든지 검색하면 알아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이라는 손 안에 들어오는 컴퓨터를 통해 먼 거리에 있는 자식들과 손자들 얼굴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어쩌면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일 것이다. 그러기에 낯익은 동네의 풍경과 익히 봐온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 마음의 위안일 수도 있겠다.
할머니들에게 엄마와의 통화는 어떤 의미일까.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얘기해준다. 특히나 재밌는 일화를 얘기하면 할머니는 아주 호탕하고 밝게 웃는다. 할머니는 특히 본인과 가장 닮은 손녀딸 (나) 에게 관심이 많아서, 바쁜 일을 핑계로 자주 전화하지 않는 손녀딸 대신 엄마를 통해 나의 근황을 아주 자세히 전해듣곤 한다. 할머니는 단체 생활을 하고 있는 만큼 엄마에게 하소연을 할 때도 많다. 그럴 때 엄마는 차분히 할머니의 말을 들어주고, 할머니가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하는 말들을 해준다. 엄마가 할머니의 엄마같을 때도 많은데, 그건 아마도 우리 모두가 가끔은 엄마같은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친할머니는 나이가 들며 청각이 점점 안 좋아지셨다. 보청기를 끼셨는데도 잘 못 알아들으실 때가 많다. 그래서 엄마가 할머니랑 통화할 때는 목소리를 크게크게 해서 말한다. 엄마의 딕션이 매우 또렷하고 목소리도 카랑카랑한 편이라 크게 말하면 할머니가 잘 알아들으신다. 가끔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할머니에게 엄마라도 부지런히 대화 상대가 되어드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엄마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극강의 T인 엄마의 리액션이 극강의 F인 나로서는 서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할머니들과 성실히 통화하는 엄마의 대화소리를 들을 때는 공감을 바란 나의 말들에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리액션을 했던 엄마를 단번에 용서할 수 있다.
친할머니는 최근 몇년까지 우울증을 앓으셨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에게 외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하게 전달해준다. 할머니들에 있어서만큼은 우리가족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없다. 엄마와 나누는 대화가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외롭고 우울한 할머니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소소한 행복과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늙으면 나는 어떤 할머니가 될까? 내 주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결혼을 했다면, 남편은 아직 살아있을까? 자식들은 가까이 살까, 아님 먼 곳에 살아 연휴에만 날 보러 올까?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곳에서 살고 있을까? 익숙한 곳을 좋아하는 할머니가 될까, 아니면 여전히 할머니가 되어서도 낯선 곳을 추구할까? 나의 삶은 지금처럼 설레고 즐거운 일들이 많을까? 웃을 일이 많을까 아니면 지극히 외로울까? 나와 자주 통화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무엇보다, 할머니가 된 나의 노년은 행복할까?
문득 나와 같이 한때는 치열한 삶을 살아내는 젊은이로서, 그리고 성숙하고 노련한 중년으로서 열심히 당신들의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들이 지금 당신들의 노년기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이 살아가는 현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워 당신께서 무능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예전처럼 자유롭게 이곳저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다이나믹한 일상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일상 속에서 나누는 익숙한 동네 사람들과의 편안한 대화, 딸/며느리가 시시콜콜하게 전해주는 자식들과 손자들에 대한 재미진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들의 일상 속 피어나는 소소한 즐거움들을 통해 꽤 자주 행복하다고 느끼셨으면 좋겠다.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