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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초 Dec 31. 2020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건설사 CEO가 되기로 결심했다

세련된 취향은 우월함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취향은 어디까지나 취향일 뿐이다.


20대 중후반 정도 나이대의 여성인 A와 B가 있다고 해보자. A는 청담동과 신사동을 좋아하고, 음식은 프렌치를 즐겨먹고, 옷은 발망과 알렉산더 맥퀸을 주로 입는다. B는 이태원과 홍대를 주로 방문하고, 엽기떡볶이와 감자탕을 소울푸드라고 찬양하며, 에이블리와 지그재그에서 옷을 사입는다. 그렇다고 A가 B보다 우월한 취향을 가졌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취향은 여러 우연적 요소들이 결합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이다.


1. 취향은 출신배경 또는 성장배경에 대한 그 어떤 암시도 해주지 못한다

: A가 유러피언 컬쳐를 좋아하고, 강의 남쪽 중에서도 가장 음식 가격이 창렬인 곳만 찾게 된 것은 A가 압구정중학교를 나온 부잣집 외동딸이어서가 아니라 지방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살면서 도시 생활을 오래토록 염원해왔기 때문일 수 있다.


반면 B는 앞서 언급된 부잣집 외동딸에 더 가까운데, 맞벌이를 하는 엄마가 요리가 귀찮다고 비교적 조리하는데 시간이 덜 걸리는 이탈리안과 프렌치만 어릴 때부터 해먹였기 때문에 “진정한 한국 음식”에 대한 염원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에 자라났을 수 있다.


2. 취향은 경제적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지표가 되지 못한다

: A의 은행계좌에 들어오는 돈은 들어오는 즉시 명품 직구 플랫폼의 할부 금액으로 빠져나가지만, B는 옷에 큰 관심이 없어 명품 옷에 소비하기 보다는 럭셔리 카를 소비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B가 생각하는 럭셔리 카는 과시하기 좋은 쿠페보다는 투박하지만 튼튼한 SUV이다. B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취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3. 취향은 개인의 업무 능력이나 성과와도 무관하다

: 또다른 캐릭터들을 소개해보겠다. C는 가슴골이 드러나는 원피스와 호피무늬, 지브라무늬 등 다양한 동물 문양이 들어간 옷들을 좋아한다. 반면 D는 깔끔한 슬렉스에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목위까지 올라오는 셔츠들만 입는다. 그들의 패션으로 드러나는 취향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추하게 만든다. C는 칼퇴를 하고 펍에 갈 것 같고, D는 3년 째 솔로 (또는 10년째 장기 연애중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연애사가 그녀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며,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 워커홀릭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C는 업무 역량이 부족하지만 D는 우수한 직원일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취향은 취향에 불과하다.


C가 파격적인 의상들만 찾게 된 건 어쩌면 정해진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본인이 너무 고리타분하고 전형적이라고 느껴져서일 수 있다. 반면 D는 본인의 업무 능력과는 무관하게 그저, 본인의 부족한 패션센스를 커버하고자 오피스룩의 정석대로만 입는 것일 수 있다.


심지어 C가 실제로 칼퇴를 하고 펍에 가는 걸 좋아한다해도, 그녀가 업무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내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별한 야근없이 일과 시간에 초집중을 한다면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일 수도 있고, 그냥 C가 원래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C의 패션이 직원으로서 그녀의 자질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CEO가 되고 싶다. 내가 꽃무늬 원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다는 점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나풀거리는, 지극히 여성적인 취향을 반영한 패션 아이템을 입은 채로 가장 남성 중심적인 산업의 CEO가 되고 싶다. 나의 취향으로 인해 형성되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파괴하는 것은 특별한 형태의 쾌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결론을 내자면, 당신이 어떠한 취향을 가졌든, 그 취향은 온전히 개인의 선호 문제일 뿐 당신을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은 모든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당신만의 취향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물론, 불법적 / 비윤리적 행위는 예외이니 오해 말아달라ㅎ)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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