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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Mar 20. 2019

"너무 기를 쓰고 살지 마라"

반짝이는 소중한 것에 대하여

몇년 전 집에서 아빠와 얘기를 하는데 아빠가 그랬다. "너무 기를 쓰고 살지 마라." 이제까지의 인생에서 내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아빠 뿐이다. 아마 앞으로도 여간해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아빠에게 내 사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기를 쓰고 산다는 얘기 따위는 더욱이 한 적이 없다. 말하자면 아빠는 내 사는 일의 구체적 면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세상에는 '안다'는 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 있다. 언어라는 도구로는 고작 '미루어 짐작한다' 또는 '느낀다' 정도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세상에는 그런 것도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잊지 않게 해준다.


나는 그런 마음을 소중히 여겨 가끔 꺼내보곤 한다. 어린 아이들이 주머니에 넣어놓고 가끔 꺼내먹는 색색깔 알사탕 같은 것이다. 어떤 때에는 꺼내보는 게 아니라 발견한다. 철 지난 점퍼를 오랜만에 입고 무심하게 손을 넣은 주머니 속에서 영문을 모르고 집히는 만원 짜리 같은 것이다.


그런데 살면 살수록 그런 소중한 마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이 많아진다. 알사탕은 알사탕일 뿐이고 만원은 만원일 뿐인 순간에는 그 소중한 마음도 기껏해야 눈물 한 뭉텅이를 보탤 뿐이다. 그럴 땐 "기를 쓰고 살아야 고작 이렇게라도 살 수 있잖아"라고 공기에다 대고 항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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