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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27. 2020

고마움이란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16

  "헤이 마루꾸, 우리는 그냥 너를 '돕고' 싶었던 거야. 우린 친구잖아. 이건 비즈니스가 아니야."

  우리 친구 하나 Hanah가 불편함 가득한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사건은 체스키로 온 첫해에 벌어졌다. 


  "사장님, 세탁기가 망가졌어요!"

  "어이쿠, 알겠어요. 바로 주문할게요."


  한창 바쁜 여름의 어느 날, 청소를 도와주는 직원 베라 Vera가 사무실로 와 얘기를 해줬다. 괜찮은 듯 덤덤하게 얘기는 했지만 마음이 급하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즌이었기에 인터넷으로 잠시만 검색하고 바로 체스키에 위치한 쁠라네오Planeo 전자상가를 찾아가 세탁기를 구매했다. 이곳 체코에서도 삼성, LG 하면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로 취급받는다. 다른 제품에 비해 좀 비쌌지만 해외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국산 브랜드로 골랐다. 그러다 문제가 발생했는데 상가 측에서 무료로 배달을 제공되지만 관광 지구 안쪽은 차량 통제가 있기 때문에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 늦어도 내일까지는 옮겨야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하지 하며 고민을 하다 우리의 친구 하나에게 연락을 하였다. 


  "하나, 우리가 쁠라네오Planeo 에서 세탁기를 샀는데, 이 친구들이 타운 안으로는 배달을 안 해준다네. 혹시 도와줄 수 있을까?"

  "오케이, 도와줄 수 있어. 우리는 트레일러가 있거든. 괜찮으면 내일 오전에 실어서 너네 펜션으로 옮기자!"

  "오! 정말 고마워! 근데 이게 많이 무거워서 많이 힘들 수 있어."

  "노 프라블럼, 걱정 마, 내 남편 데려갈 게."


  하나는 항상 밝은 에너지를 풍긴다. 자신도 태양이 너무 좋단다. 그래서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이어지는 장마철에는 기분이 처진다고. 별자리 얘기를 하며 자기는 태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며 우리의 별자리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우리를 아껴주는 진심이 느껴져는 참 고마운 친구다. 남편까지 대동해 온다는 얘기를 듣고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랑금과 나는 사전에 세탁기 옮기면 밥을 대접하자고 얘기를 끝냈다.


  하나와 남편의 트레일러 덕분에 무사히 펜션으로 세탁기를 옮겼고, 생각보다 무거운 이 녀석을 하나의 남편과 함께 낑낑대며 지하에 있는 세탁실까지 잘 옮겼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생각해 두 사람에게 연신 고맙다는 얘기와 함께 준비했던 말을 넌지시 건넸다.


  "하나, 오늘 너무 고마워. 그래서 랑금이랑 내가 너랑 네 남편에게 밥을 대접하고 싶어. 함께 점심 먹자!"

  "..... "


  하나 남편은 이 말을 뒤에서 듣고는 살짝 실망한 듯 고개를 살짝 떨구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목장갑을 툴툴 털며 자신의 차로 걸어갔고, 하나는 이 상황이 불편하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헤이 마루꾸, 우리는 그냥 너를 '돕고' 싶었던 거야. 우린 친구잖아. 이건 비즈니스가 아니야."

  "어? 아.. 미안해. 난 그냥.. 한국에선 흔히 이렇게 하는데.. 불편했다면 미안해."

  "응, 괜찮아. 점심은 다음에 같이 먹기로 하자. 일이 잘 해결됐으니 나랑 남편은 가볼게."


  몹시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서는 흔한, 친구 사이에서 왕왕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지금 우리에겐 불편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도움(help)이란 행동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차이가 확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각국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생들이 모이면 한국 사람들이 이상하게, 많이 무시당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가 한국 학생들은 '잘 모른다.', '도와주세요'라는 얘기를 너무 쉽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르는 걸 모른다 얘기하는 게, 도움이 필요해 도와달라 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몸으로 겪으며 깨달은 '도움'은 매우 소중하며 귀한 것이었다.


  헬프(help)라는 '돕다'라는 단어의 뜻은, 한국과 영어의 차이가 없었다. 

[거들어 힘이 덜 들게 하거나 그 일이 잘 이뤄지게 하다. 또는, (남을) 거들어 그가 하는 일이 힘이 덜 들게 하거나 잘 이뤄지게 하다]


  이는 다른 말로 [타인에게 자신의 권리 일부를 넘겨주고, 넘겨받은 권리 일부를 짊어진 상대가 자신의 목적을 쉽게 성취하거나 잘 이뤄지게 한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단어가 가진 뜻대로 본다면, 돕는다는 개념은 '도움의 대상자'를 위한 일이기에, 돕는 행위가 어떤 보상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엄밀히는 요구할 수도 없다. 반대로는, 어떤 보상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도움에 대한 수락/거절에는 큰 책임이 수반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위급한 상황이거나 친밀한 관계가 아닌 이상 도움을 구한다는 건, 거절당할 수 있는 행동이 될 수 있으며, 권리를 넘겨받는 순간 책임도 따르기에 그 말 자체가 듣는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행동이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친밀한 관계에서 도움은, 아무 대가가 따르지 않는, 상대의 문제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짊어져 준다는 의미가 된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한국의 품앗이 문화는 이쪽 문화에서 바라보기에는 경우에 따라 비즈니스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상대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와의 관계를 고려해 충분히 이 상황을 안고 가겠다 마음먹고 도와줬는데, 일이 잘 해결된 뒤 고맙다며 상대방이 손에 쌈짓돈을 쥐여주려 한다면 충분히 이 상황이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경우에 따라선 저렴한 비용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불렀다 생각할 수도. 액수의 차이일 뿐, 돈만 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순간 랑금과 내 결혼식이 머릿속을 스치며 가슴속에 미안한 마음이 꿀렁였다. 


  결혼식 당일, 가장 친한 친구 뽁이 결혼식 사회를 맡아줬는데 식전부터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줘서 정말 고마웠다. 반면 결혼 준비하느라, 또 결혼식 치르느라 뽁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썼던 우리는 미안한 맘이 가득했다. 결혼이 끝난 뒤 공항 가기 전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서 잠시 모였을 때, 뽁이 무리에서 잠깐 떨어졌을 때 쫓아가 가족이랑 밥이라도 먹으라며 슬쩍 봉투를 몰래 건넸었다. 그때 내가 느꼈던 뽁의 감정이 하나와 똑 닮았다. 아니, 뽁은 더 큰 감정을 쏟아냈었다. 얼굴이 금세 울그락 붉으락 변해서는 화를 내며 '야 이 병*새끼야, 이거 안 치워? 뭐하는겨!'라는 쌍욕을 해 댔겼다. 나에겐 미안하고도 기분 좋은 욕이었다.


  고마움을 표현한다는 건, 대접을 받고 기쁜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랑금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대접받는 것보다 대접해 주는 걸 좋아하고 우리 가족, 친구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한다. 부자를 꿈꾸지만 남에게 충분히 퍼주기에 부족함 없는 부자를 꿈꾼다. 그나마 이곳에서 생활을 하며 우리의 가치를 다시금 깨달아가며 고마움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아 갔다.


  하나Hanah가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이것저것 챙겨주는 게 고마워 어떻게 이 기쁨을 표현할까 고민을 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나는, 제법 실험적인 그림이었지만 성공적이었던, 캔버스에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려 하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그리다가 멈췄다가, 다시 생각하고 그리고,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고 다시 그리고, 생각하고 멈추고를 반복해 한 달 반, 거의 두 달이 걸려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첫 번째 한국 들어갈 때였던 듯, 우리의 한국 여행 소식을 전해주러 하나네 집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이때 준비한 그림을 깜짝 선물로 전달하려 했다. 선물을 주자 깜짝 놀란 하나는 이게 뭐냐며 소녀처럼 활짝 웃었고 턱밑까지 차오른 기쁨과 기대감을 맘껏 표현하며 랑금이 포장해둔 예쁜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포장지 속 그림을 발견하고는 이게 뭐냐며 눈이 휘둥그레진 하나에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곳에서 랑금과 나는 너의 도움으로 잘 버티고 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그림으로 표현해봤다며 우리의 맘을 전했다(아, 킴은 우리에게 펜션을 인수인계한 뒤 바람처럼 프라하로 갔다. 이후 종종 만나거나 연락하며 지냈는데, 지금은 연락이 끊겼다). 그림을 꼭 끌어안으며 하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았고 그 모습에 이번에는 우리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왜 그래 하나, 무슨 일이야,라며 당황했다. 너무 고맙다며, 너무 좋다며 우리를 꼭 끌어안아줬고 그림을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림에 대해 설명을 내게 부탁하였고, 여기저기 담겨있는 의미,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아이디어와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설명을 다 들은 하나는 다시 한번 꼭, 조금은 오래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가장 좋다 생각한 벽의 어느 위치에 그림을 걸었다. 이때 고마움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구나라는 걸 깊이 깨달았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음에도 기뻐하는 하나의 모습에 우리들의 마음은 가득 채워졌다. 


도움과 부탁, 거래(비즈니스)에 대한 짧은 생각.


  내 이익이나 불편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나와 관계가 없는 '남'에게 대가가 없는 도움을 구하면 안 된다. '고마움'이나 '미안함'을 대가로 내세우는 건, 상대에 대한 큰 실례다. 도움을 받았다면 진심으로 기쁨을 담은 '웃음'을 대가로 표현하는 게 맞다. 그게 아니라면 도움을 구하기 전 '거래'를 제안하는 게 맞다. 


  자기 마음대로 상대방에게 '웃으'며 먼저 '실례'해서도 안 된다. 이는 마치, '웃음'과 '실례합니다'라는 대가를 치렀으니 내가 원하는 걸 당신이 해줘야겠어라고 협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느 드라마에서 '내 뺨 한 대만 쳐'라는 남주인공의 말에 뺨을 때린 여주인공, 그러자 '그럼 이제 뺨 맞을 짓 한다'라고 말하는 남주인공과 같다.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물건 팔기 싫은 상인에게 찾아가 돈을 먼저 손에 쥐여주고, 당신은 돈을 받았으니 나는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가겠소 한다면, 경찰에게 잡혀가는 게 맞다. 장사의 기본은 영수증이다. 영수증도 없이 돈을 먼저 쥐여준 사람은 반드시 후회할 일을 당하게 돼있다.


  도움이란, 거래가 아닌 관계다. 관계가 없는 이에게 도움을 받는 건 공짜가 아니다. 엄연히 관계가 있는 사람 간에는 도움이란 관계에 이르기까지 투입된 '함께 나눈 시간'이란 대가가 선지불됐다. 만약, 누군가에게 값없이 도움받았다면, 누군가에게 값없이 도움을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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