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했던 그날의 이야기
아버지는 올해 79세, 바뀐 한국 나이로 78세다. 워낙 시골이라 운전을 하지 않으면 이동이 불편하기에 그 나이에도 운전을 하신다. 동네에서는.
정기 검진은 춘천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하기에 혼자 이동하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택시까지 타야한다. 마침 내가 쉬고 있어서 내가 같이 가기로 했다. 전날 강원도 집에 내려가 잠을 자고 6시 30분 집을 나섰다. 강원도 집에서 춘천까지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꼬불꼬불하고 경사가 급한 구간이 많지만 나는 운전 경력 8년차이고 강원도 집은 일년에도 몇 번씩 다녀오기에 익숙한 길이다.
집을 떠나 가장 꼬부랑이 심하고 경사가 급한 구간을 지날때다.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았다. 계속해서 방향전환을 해야하는데 아무리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눌리지 않았다.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다. 이른 시간이라 반대쪽에도 우리 차선에도 차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이게 급발진인가. 왜 브레이크가 안 밟힐까. 어떻게 해야할까. 어딘가에 부딪쳐야만 차가 멈출까. 차를 세우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본능적으로 기어가 D에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어를 수동 M모드로 옮기고 운전대를 있는 힘껏 잡고 겨우 비탈길을 내려왔다. 그럼에도 속도는 크게 줄지 않았다.
완만한 곡선의 평지에 다다랐을때 어떻게 해야 차가 멈출까, 도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드라마에서나 보았지 이런 상황은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패닉 상태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계속 방법을 찾으려고 한 것은 뒷좌석에 탄 아버지 때문이었다. 평소에 하지도 않는 효도를 하겠다고 괜히 와서 큰 사고가 나는 것 아닐까하는 불안함과 죄책감.
수 많은 생각을 하며 운전대를 부여잡고 있을 때, 도로옆에 포장마차와 작업대기소 건물이 있는 작은 샛길 공간이 보였다. 차의 방향을 샛길로 바꾸고 도로를 벗어나자마자 기어를 P로 바꾸었다. 차를 멈추기 위해 생각나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다. 차가 멈출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여전히 브레이크가 밟히지 않았지만 차가 멈추었다.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오전 7시였다. 보험사에 연락해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렀다. 40분 넘게 걸린다고 했다. 지나다니는 차도, 당연히 택시도 없는 길이었다. 아버지의 병원 예약시간은 9시였다. 바로 출발해도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 달 전에 잡은 예약이라 취소하면 또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20분쯤 지났을 때 시내로 가는 고속버스가 왔다. 황급히 손을 흔들어 아버지를 태워 보냈다. 불안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보험사의 긴급출동은 8시가 넘어 도착했다. 워낙 시골이고 사고 지점이 지역 경계를 가르는 곳이어서 시간이 더 걸린 듯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바로 확인이 어려워 견인을 했다. 집이 있는 동네의 카센터로 돌아왔다.
정비사는 외관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고 했다. 그럼에도 견인해주신 분이 주행중 P로 차를 세워버리면 미션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고 해서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큰 수리가 될까봐 더 긴장되었다. 일단 브레이크 오일을 다 빼고 새것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브레이크 오일을 교체하면서 다행히 원인 파악이 되었다. 브레이크 오일 안에 공기가 너무 많이 유입되어서 일시적으로 브레이크가 작동 안한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문제점을 발견하고 정비사님과 시운전을 하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운이 좋아서 무사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거린다.
일시적인 현상이었다고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생과 사를 가를수도 있는 문제였다. 주기적인 자동차 점검을 꼭 해야하는 이유다. 점검 주기와 소모품의 교체 시기를 잘 기록하고 관리해야한다. 운전자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이 후 운전 중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정비사님의 조언은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차는 세울 수 있지만 도로에서 세우면 2차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을 수 있으니 갓길로 빠져야 한다.) 일시적으로 브레이크가 작동 안하는 것이라면 최대한 세게 한 번에 밟아본다. 그래도 안된다면 기어를 수동으로 바꾸고 한단계씩 내린다. 속도가 조금 줄어든다.
최악의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차를 세우는 방법은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어딘가에 부딪혀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비상 깜빡이를 켠 다음 고속도로라면 가드레일에, 일반 도로라면 인도 등에 차 옆면을 부딪쳐 차를 멈춘다.
사고가 날뻔 한 이후 고속도로를 달리다 브레이크 고장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된 것을 보았다. 언덕처럼 생겨서 그곳으로 차량을 운전하면 속도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평상시 주의깊게 봐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