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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온한바다 Feb 01. 2021

국가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

National Interest & The Right to Know

국민의 알 권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녹아 있는 국민의 핵심적인 권리 중 하나이자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작동시키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국민의 알 권리는 국가이익과 상충하는 특징을 가진다. 때론 양날의 검(two edged sword)과도 같다.
 
먼저,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을 살펴보자. 국가이익의 종류에는 안보(Security), 번영(Prosperity), 명예/위상(Prestige), 보편적 가치(민주주의, 인권 등) 추구 등 여러 가지가 있다(국익의 종류는 정의하는 학자마다 다름). 그리고 국가이익의 수준(Level)은 생존/사활 이익(Survival Interest), 핵심이익(Vital Interest), 중요 이익(Major Interest), 부가 이익(Peripheral Interest) 등으로 보통 구분되는데, 이중 안보와 번영(또는 경제)은 생존/사활 이익에 해당하며,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이익이다. 다시 말해, 이 두 가지 이익을 잃게 되면, 국가는 망한다. 과거 우리나라 역사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국가이익 수호를 최상위 목표로 설정하고(Ends)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을 수립하고(Ways) 국가 제 요소(DIME)들을 운용한다(Means).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국가운영 시스템이다. 잠시 다른 곳으로 빠졌지만, 앞서 설명한 생존/사활 이익인 ‘안보’의 중요성을 기억하자.
 
다음은 국민의 알 권리이다. 국민의 알 권리는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우리가 잘 알고 있고 과거 치열한 민주주의 수호 과정을 통해 얻게 된 귀중한 권리이자 가치 중 하나이다.
 
이렇듯 중요한 두 가지 가치는 때론 충돌하는 하게 되는데, 이 경우 우리는 국가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난제에 봉착하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먼저, 최근 우리나라 잠수함 수척이 고장으로 전력의 공백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기사 내용의 사실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를 보도한 기자는 분명,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잠수함의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알림으로써 과거 잠수함 도입 당시의 문제점이나 현재 운용상의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 이 문제점을 어떻게 잘 해결하는 지를 국가의 주인이 국민들이 직접 점검하고 감시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 켠으로 보면, 국익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다. 우리나라 잠수함은 국가 안보의 핵심 전력 중 하나로, 평시(peacetime)에 북한은 물론 주변국에게 상당한 억제력(Deterrence)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핵심 정보인 잠수함의 전력 공백 사실을 주변국(적국 또는 잠재적 적국)에게 무료로 배포해주었다. 많은 국가들은 다른 국가의 핵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매년 수 백억 원 많게는 수 천억 원씩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공짜로 나눠주는 부작용을 낳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과거 참여 정부(2003년) 당시, 우리 정부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사업(당시 362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원자력 추진 잠수함 확보는 우리 안보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익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으로 추진되었다. 그 당시에도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운 폭로 기사가 나왔고, 주변국들(미국, 일본, 러시아 등)의 엄청난 외교적 압박으로 결국 우리나라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말았다. 국익(안보) 차원에서 실로 엄청난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그때 추진되었더라면, 지금쯤 2~3척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례는 기자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행위였다고 보기는 조금 힘든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들은 몇몇 기자들의 개인적 보도 성취를 위해 했던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국가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가 충돌할 경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물론 정답은 없다. 선택의 문제다.
 
결국, 앞서 설명한 국가이익의 종류(안보, 번영, 명예/위상, 보편적 가치 등) 중 어느 것이 상위 포지션을 차지하는 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민주주의 국가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최상위 국익으로 ‘안보’와 ‘번영’을 꼽고 있다. 국가가 없으면, 명예/위상이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이익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무작정 침해되어서도 결코 안된다. 과거 우리의 역사처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침해되거나 유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답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는 듯 하다. 아마도 많은 관점(perspectives)들을 보고 듣게 되어서 그러는가 보구나.”라고 나 자신을 위로한다.
 
끝으로 이 문제와 관련된 손자병법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글을 마친다.
"能而示之不能(능이시지불능) 用而示之不用(용이시지불용) 近而示之遠(근이시지원) 遠而示之近(원이시지근)"

“능력이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공격의 의도가 있지만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며, 가까운 곳을 노리면서 먼 곳을 노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먼 곳을 노리면서도 가까운 곳을 노리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라는 뜻으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나의 능력, 의도, 상태를 적에게 계속 속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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