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뉴 Feb 29. 2024

어쨌든, 결혼식

우리다운, 우리만의 결혼사진전

'어쨌든, 연애'라는 글을 쓰고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쨌든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도 각 글의 주인공은 동일 인물이다. 지난주에는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날 5주년을 맞이하여 짝꿍이 만든 당근케이크를 먹었다. 아마 연애한 날짜를 기준으로 기념일을 세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이 생겼기에.


처음으로 연애다운 연애를 하게 해 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와 생활 속의 연애를 하고 싶었던 나는 참지 못하고 먼저 프로포즈를 해버렸다.


생활 속의 연애, 그게 결혼이라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어쨌든, 연애 中>


결혼은 나와 하고 싶지만 빨리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던 그도 정성스레 준비한 프로포즈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




질문)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다면 뭘 해야 할까? 

답) 반지. 


연애하고 처음 맞이한 크리스마스 때 직접 만들었던 커플링을 갈아치울 좋은 핑계였다. 세상에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웨딩링이 많았지만, 비싸기도 비쌀뿐더러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웨딩링을 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랩다이아몬드(Lab Diamond)'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랩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다이아몬드라고 했다. 다이아몬드 이면에 감춰진 인권과 환경 문제에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겉으로 보기에도 실제 성분도 천연 다이아몬드와 똑같을뿐더러,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니. 


그렇게 직접 우리가 고른 (랩)다이아가 박힌 우리만의 웨딩밴드가 탄생했다. 결혼식을 올리기 1년 하고도 2개월 전에!




웨딩밴드를 맞추고 내친김에 상견례까지 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 결혼식 준비밖에 남지 않았다. 그제야 내가 결혼생활을 할 마음의 준비는 됐을지언정, 결혼식이라는 프로젝트에 뛰어들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결혼이었지 결혼식은 아니었다고 울부짖었으나, 그런 무책임한 헛소리를 들어줄 이는 없었다. 


(결혼식을)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준비하는 재미라도 있게 우리다운 & 우리만의 결혼식을 하자, 그렇게 우리는 상상 속에만 있었던 '결혼사진전'이라는 것을 정말로 하게 되었다.


사진 전시와 함께 하객분들께 식사도 대접할 수 있는 갤러리를 찾고, 전시할 사진을 고르고, 인화하고, 액자를 만들고(우리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진짜로 폼보드 액자를 '만들'었다), 전시회 설명 라벨과 포스터를 만들고, 사진 배치도를 구상하고, 결혼식 하루 전날에는 그 모든 것들을 갤러리에 설치하느라 정신없었다. 수직수평이 맞게 액자를 설치하고, 라벨과 포스터를 붙이고, 영상을 틀 빔프로젝터까지 설치하고 나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결혼식 도중에 액자가 떨어지면 어쩌지?'와 같은 무한상상의 나래를 펴며 잠 못 이루는 결혼식 전날 밤이었다.




불면 끝에 맞이한 결혼식 당일, 다행히도 결혼식 도중에 액자가 떨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사진을 잔뜩 걸어놓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수요 없는 공급'은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어쩌면 남의 결혼식 자체가 수요 없는 공급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우리가 함께 만들어온 추억을 재미있게 즐겨주었다. 대단한 작품도 아닌 우리의 사진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고, 때로는 사진 앞에 서서 서로 감상을 나누고, 우리에게도 다가와 우리의 이야기를 알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했다. 


나는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결혼식의 의미를 깨달았다. 결혼식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찾아와 우리의 앞날을 축복하고 함께 기뻐해주는 행사였던 것이다. 나의 좋은 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찾아와 주는 일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그건 신랑신부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님께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왜 미처 몰랐을까. 그런 결혼식을 하기 싫다고 칭얼댔던, 결혼식은 신랑신부의 행사라고 여겼던 나는 얼마나 생각이 짧았던 걸까. 


반성과 감사와 기쁨 그 모든 감정을 가득 끌어안고, 우리는 어쨌든 결혼식이라는 프로젝트를 마쳤다. 비록 그 결혼식이 결혼이라는 길고 긴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킥오프'에 불과했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어쨌든, 장례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