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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y JP Mar 20. 2020

WFH-Day 4

2020. 3. 19. 목요일

한국행 비행기표를 아직 끊지 않았지만, 약 한 달 뒤면 아마도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다. 다시 곧 회사에 복귀하고, 언제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했었냐는듯이 살고 있겠지. 아침에 일어나면 H1, H2를 아파트 건물에 있는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차를 타고 회사로 출근. 롯데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대체로 혼자, 늦은 점심식사. 일하다가 아마도 명동에서 대체로 혼자, 저녁식사. 일하다가 들어가면 애들은 자고 있고,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거나 아니면 벅스 뮤직으로 음악을 틀고. 주말이 되면 애들을 데리고 하남 스타필드에 가거나, 그 주에 엄마들이 많이 데리고 가는 어딘가에 가보기. 늘 비슷비슷한 외식, 집에 돌아오면 애들은 이모님이나 엄마에게 맡기고 안방에 들어가서 핸드폰으로 인터넷하며 쉬기? 한국에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까. 필라델피아에서 처음 시작한 인스타그램이어서 이제까지의 나의 경험과 공유는 모두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SNS인데. 한국에 있다는 게 정말 실감나겠지.


한국에 돌아간 이후의 삶을 그려보니, 벌써부터 힘이 쭉 빠진다. 2018년 7월부터 계속, 뉴욕바시험 준비할 때의 2개월을 제외하고 2020년 3월까지 내가 혼자서 데리고 있던 H1가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간 지 이제 2주 정도 되었다. 이국땅에서 혼자, 공부하며 살림하며 뉴욕 로펌에서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건 정말 쉽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물론 유펜 로스쿨에서 학생으로서의 삶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슴 깊은 아쉬움이 맺혀 있지만, 훌륭한 남편의 아내이자 건강하고 예쁜 두 아이의 엄마로서 누린 것도 많으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아직 뉴욕 로펌에서 일할 날이 더 남아있고, 뉴욕 맨하튼 집을 뺄 날은 한 달도 넘게 남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지나갔다'는 생각이 짙다.


이제 모든 것이 과거가 되어버렸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보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나의 사랑하는 두 딸과 늘 고마운 남편과 함께 지내고, 부모님도 자주 챙겨드리고 동생과도 따뜻한 만남을 가지는 삶이 내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것들이라 하더라도, 아무튼 지금은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여유, 자유, 수많은 공연들과 여행이 지나가버린 과거로 박혀버린 것만 같다.


지금 뉴욕은 난리다. COVID-19가 이제서야 큰 이슈가 되고 있고, 검사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는 온 도시를 긴장하게 만든다. 내가 일하고 있는 뉴욕 로펌은 이번 주 월요일(2020. 3. 16.)부터 Work From Home을 시작했다. 원래 공지된 건 뉴욕 오피스의 전체 변호사를 두 팀으로 나눠서, 1팀은 월/화 재택근무, 2팀은 수/목 재택근무를 시범적으로 시도해본다는 거였는데,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월요일에 전체 변호사들이 재택근무를 하도록 계획을 변경했다. 그래서 오늘이 네번 째 재택근무일이다. 여기서 외국변호사로 근무하는 나는, 일반 어소씨에이트들과 달리 업무강도가 높지 않고 근무형태가 자유로워서 (그 누구도 내가 회사에 출근하는지 아닌지 체크하고 관여하지 않고, 빌러블 아워(billable hour)에 대한 부담감도 거의 없다) 재택근무 공지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해방감까지 느꼈는데, 막상 현실은 재택근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 밖에 나가지를 못하니 하루가 다르게 피로감을 느끼고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은 나의 성격. 언제부터 이런 성격이 형성된건지 모르겠지만, 이 성격 때문에 나는 이제까지 끊임없이 뭔가를 해왔다. 요리, 여행, 공연관람 등. 집에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어제 세 시간 정도 일한 게 전부고, 오늘은 지금 오후 3시가 되도록 기업팀 전체 컨퍼런스콜 1시간, 기존 업무 관련 추가 팔로우업 30분 정도가 전부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집에는 혼자 있으니, 아무하고도 말할 상대가 없어서 '그냥 일찍 한국에 돌아갈까', '일찍 돌아가면 100% 후회하겠지'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랑 친하게 지내는 코즈에짱(梢ちゃん)으로부터 어제 오후 3시쯤 라인 메시지가 왔다. 자기도 지금 너무 심심한데 이제와서 센트럴파크라도 걷자고 제안하는 건 너무 늦은거겠지? 하고 묻는데, 그 메시지가 너무 반가웠다. 그 때는 일하고 있던 때라 당장 밖으로 나가기 어려웠지만, 오전에 회사에 남겨두었던 잡동사니를 가지러 미드타운으로 나갔다가 어퍼이스트에 있는 하브스(Harbs)에서 케이스 5조각을 사온 상태여서, 같이 저녁을 먹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럼 이누이상(乾さん)이랑 같이 우리 집에서 저녁먹을래? 우리 집에 하브스 케이크 4조각이 있고, 소고기 마리네이드 해둔 것도 있어."

"We would love too! Thank you for your lovely invitation!! Before 屋内退避(おくないたいひ) will become real... ケーキを買ったね!"

저녁 8시쯤 어퍼 웨스트에 있는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셋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이누이상은 소파 옆에 있는 파란색 웨스트엠 (West Elm) 의자에 앉았고, 코즈에짱은 따뜻한 베이지색 레이지보이의자에 몸을 편히 기대고, 티비에서 나오는 유튜브 NBC 뉴스 채널을 보고 대화를 나눴다. 나는 갓 지은 흰 쌀밥, 양파, 애호박, 두부를 넣어 만든 한국식 된장찌개, 아파트 근처 쥬빌리 마켓에서 산 크림드 스피니치(화씨 350도 오븐으로 20분간 데웠다), 미리 쿠마토(Kumato)로 만들어 둔 카프레제(생 모짜렐라 치즈, 마늘이 끼워진 올리브, 올리브유, 발사믹비네거, 바질가루를 버무려서 글라스락에 담은 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김치, 씨겨자를 식탁에 하나하나 올렸고, 휘슬러 스테인레스 팬을 예열시킨 후 미리 마리네이드 해 둔 소고기를 구웠다. (올리브유와 홀푸드(WholeFoods)에서 사온 보사리(Borsari)의 올 네츄럴 오리지널 블랜드 시즈닝 가루를 사용해서 글라스락에 담아 마리네이드 했는데, 소고기가 확실히 부드러워지고 간도 맞아서 매우 만족스러웠고 손님을 초대해서 대접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상태였다) 소고기 3덩이를 구울까 2덩이를 구울까 고민하다가, 양고기도 오븐으로 굽고 있으니 2덩이만 구웠다. 코즈에짱과 이누이상은 옅은 회색의 벤치형 의자에 나란히 같이 앉고, 나는 빨간색 의자에 앉았다. 부부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향이 거의 날아간 촛불을 켰다. 스포티파이(Spotify)로 음악을 들으며 나는 샴페인을, 이누이상은 부엉이맥주를 잔에 따랐다.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 코즈에짱은 샴페인과 맥주를 약간씩 맛만 보았다. (코즈에짱은 아직 재즈바 같은 곳에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했다) 에비앙 물을 올려두긴 했지만, 식탁에 올려진 따뜻한 티를 물 대신 마셨다. 그 티는 예전에 홍콩에 갔을 때 포시즌호텔 방에 있던 티백을 챙겨온 것인데 약간 숙성된 녹차맛이 나는 꽤 괜찮은 티였다. (아직도 호텔에 가면 샴푸 린스 등과 티백, 커피를 챙겨오고, 남편은 이런 내 습관을 매우 싫어한다...) 소고기 스테이크를 다 먹을 때쯤, 오븐으로 굽고 있던 양고기도 시간이 다 됐다는 알람이 울렸다. 양고기는 올리브유와 오리지널 시즈닝 가루로 시즈닝을 한 후, 오븐용 팬 위에 그릴을 얹고 그 위에서 화씨 450도 오븐으로 40분 (중간에 뒤집어준다)정도 구웠다. 화요일에 처음으로 양고기 프렌치렉을 구웠었는데, 어제는 그 때와 달리 좀더 바삭하고 맛있게 되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하브스에서 사 온 크레이프 케이크, 쵸코렛 케이크, 마차(Matcha)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이누이상은 따뜻한 라떼와, 나랑 코즈에짱은 따뜻한 티랑 같이. 저녁 11시쯤 이누이상 부부가 돌아가고, 나는 그릇들을 대충 행궈서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이누이상이 쓰지 않은 샴페인잔은 그대로 다시 찬장에 넣고, 코즈에짱이 샴페인을 한 모금 맛 보기 위해 쓴 샴페인잔은 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내가 쓰던 샴페인잔에는 남은 샴페인을 따랐다. 그리고 오늘, 오후 1시쯤 일어났다.


오늘 아침은 어제 남은 된장국, 시금치 (피터루거에서 만든 크림드 스피니치였지만, 크림맛은 거의 안 나고 생 시금치 느낌이었다), 김, 치즈, 김치에,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되어가는 소시지로 결정했다. 소시지는 그냥 가위로 자른 후 테팔 후라이팬에 구워 일회용 종이접시에 담았다. 종이접시가 소시지의 기름기를 흡수해줄 거라는 생각으로. 아직도 어제 담아둔 샴페인이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이제는 버려야겠지. 어느새 오후 4시가 되었고, 창밖은 흐리다. 그래도 집 안에 있으면 청결하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제 사서 꽂아둔 튤립이 힘없이 흐트러져있지만 그 자체로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듯하다.


오늘은 기운이 나서, 샌프란시스코와 포틀랜드 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으로 빨래를 돌렸다. 필라델피아에서 살았던 집은 집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지만, 지금 뉴욕 집은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를 써야 한다. 그나마 편한 점은,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가 집 바로 옆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도 없이 다섯 걸음 정도만 걸으면 세탁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과, 동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 세탁기 한 번 돌리는 데 2.75 달러, 건조기 한 번 돌리는 데 2.75 달러가 드는데, 난 빨래를 모아두었다가 흰 빨래, 색깔있는 빨래를 나눠서 세탁기 두 개를 동시에 돌리기 때문에 한 번 빨래를 하면 총 8.25 달러가 든다. 우와, 거의 만 원이네. 이젠 이 금액을 계산해보려해도 암산으로는 헷갈리고 아이폰 계산기를 이용해야 하네. 아무튼 지금은 건조기에서 건조 중이고, 몇몇 내가 아끼는 옷들(슬리피존스 잠옷, 파타고니아 바지, 키스(Keith) 후드티, 브리지 앤 번 (Bridge and Burn)의 하얀 티셔츠와 캐시미어 양말, 월포드(Walford) 탑과 레깅스, 얼마 전에 포틀랜드에 있는 와일드팡 (Wild Fang)에서 산 티 셔츠 2개는 집 안에 빨래건조대를 펴고 말리기 시작했다.

 

이제 아침먹은 거 치우고 책을 조금 읽다가 저녁을 먹어야겠다. 그리고 한국 아침이 되면, 남편이랑 언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좋을지 상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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