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ke a star
산으로 이어진 길은 깜깜해서 마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명원이 운전석 쪽 창문을 내렸다, 숲이 뿜어내는 공기가 흐름을 타고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바람이 수민의 무릎 위에 올려 둔 비닐봉지를 흔들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천문대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던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과 과자, 음료수가 들어 있었다. 빽빽한 덤불로 둘러싸인 편의점은 장사가 될까 싶을만큼 한적한 곳에 홀로 서 있었지만 들어가보니 꽤 다양한 물건을 팔았다. 한 명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한 명은 긴 머리 가발을 뒤집어 쓰고서 마치 2인조 도망자처럼 조용히 움직이며 음식을 담았다. 그렇지만 그 곳에 사람이라고는 그들과 점원뿐이라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명원이 “태연하게 굴어요.” 하고 귓가에 속삭였고 수민은 그 말에 목 뒷덜미가 짜릿했다.
수민은 바람 때문에 흐트러지는 앞 머리카락을 자꾸 쓸어 넘겼다. 명원의 머리카락도 정신없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빛을 보기 위해 어둠을 통과해야 하다니. 여긴 가로등도 하나 없네요.”
명원이 핸들을 부드럽게 돌리며 구불구불한 길을 침착하게 운전해갔다.
“별빛이 워낙 약하잖아요. 아주 멀리서 오는 빛이니까. 정성 들여 보지 않으면 놓칠수도 있다구요.”
“언제부터 별을 좋아했어요”
“그런스콜라에서 ‘스테른스코다나’라고 천문관측 클럽 활동을 했어요. 겨울이면 오로라를 보러 북부지방으로 여행을 갔고요. 첫 수업에 선생님이 그랬어요.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더 멀리 더 높이 보게 되었을때 그 최초의 인간이 올려다 본 하늘은 어땠을까? 엄청나게 많은 반짝이는 별을 보며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려웠을까? 아니면 신의 존재를 느끼고 엎드려 경배했을까? 지금 우리는 우주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별을 보는 순간 그 지식들은 무용해져요. 그저 그 최초의 인간처럼 두렵거나 경배하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되죠.”
“옛날 사람들은 반짝이는 별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라고 생각했잖아요.”
“별을 보면 상상력이 자극돼요.”
“별 보는 거, 엄청 낭만적이네.”
“그럼요. 사람 마음을 흔들죠. 우리 클럽에는 전통이 있는데요. 이른바 스트자르나 베카널스. 별빛 고백이라고… 눈 위에 침낭 깔고 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사랑고백 하면 무조건 이루어져요.”
아하. 그래서 그 남자랑 천문대를 가고 싶었던 거였구나. 명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뱀의 몸통 같은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궁금할 때쯤 별마로 천문대 500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흰 화살표가 비스듬히 하늘 방향을 가리켰다. 천문대는 오르막의 끝에 있다. 희미한 빛이 나뭇잎 사이로 언뜻 언뜻 새어나오더니 갑자기 탁 트인 지대가 드러났다. 눈 앞에 나선형 기둥이 세워진 2층 건물이 보였다. 예상보다 크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이었다. 작은 전구가 별처럼 매달려 깜빡거렸고 건물 꼭대기에 커다랗게 빛을 내고 있는 네온싸인 덕분에 휴게소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건물 오른쪽에 마련된 주차장에는 차가 꽤 많았다. 평일 저녁에도 별을 보러 온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예상밖인데.”
천문대라고 해서 고요한 사찰을 떠올렸는데 예상을 빗나갔다. 명원은 속도를 줄여 주차장 안을 천천히 돌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흝고 지나가는 소리가 그들을 이끌었다. 명원은 최대한 어둡고 외진 곳에 차를 세웠다. 헤드라이트를 끄자 눈앞에는 밤보다 더 어두운 숲. 그리고 바람에 따라 일렁거리는 나뭇잎 그림자들 뿐이었다.
“숨어 있기엔 적당하네요.”
명원이 차의 썬루프를 열었다. 둘은 시트를 뒤로 넘기고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별이 비처럼 쏟아졌으면 멋졌겠지만 깨끗한 밤하늘에는 다소 아쉬운 갯수의 별이 반짝거렸다. 병원 근처보다는 많았지만 만족스러울만큼은 아니다. 역시 현실은 완벽하게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나랑 안 왔다고 치고 다음에 다시 와요. 이대로는 안되겠네.”
“숨으러 왔으니까 잘 숨어 있다 가면 돼요.”
“숨는 장소로는 좋아요. 사람들이 하늘만 쳐다보니까 옆에 사람이 지나가도 몰라서.”
명원은 좌석을 제자리로 돌리고 봉지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꺼내 수민에게 건네주었다. 완전 밀봉된 삼각김밥은 수민에게 낯선 음식이었다. 수민이 비닐을 뜯지 못하자 명원이 자신의 것을 뜯어 수민에게 내밀었다. 손에 힘을 주면 금방 바스러질 것 같아 수민은 조심스럽게 받았다. 명원은 능숙하게 다음 삼각김밥을 꺼내 입에 덥썩 베어물었다. 김이 부서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삼각김밥 맛은 아주 좋았다. 수민은 샌드위치보다 간편하다고 생각했다. 손에 묻어나는 것도 거의 없고 가운데 들어 있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달콤짭짤한 게 입맛을 돋웠다.
“한국에서는 맨눈으로 별을 보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한밤중에도 환하게 밝으니까. 아! 우리나라에서 별을 제일 쉽게 볼 수 있는 데가 있는데. 어딘지 알아요?”
“어딘데요?”
“공연장.”
대답해놓고 명원이 또 웃었다.
“공연할때 팬들이 핸드폰 조명을 켜서 흔들어주거든요. 정말 장관이에요. 하늘의 별이 지상에 내려와 나에게 쏟아지는 느낌이에요. 아니면 그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서 분해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죠. 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별이 되어서 나를 향해 힘껏 반짝이고 있는 걸 보면 나도 꽤 괜찮은 별이 되는 것 같아요.”
“아! 별이로군요.”
수민이 손가락으로 명원을 가리켰다.
“네?”
“그러고 보니 별이라구요. 스타잖아요. 루오가 스타라고 그러던데. 한국에서 엄청 인기 많은 스타.”
자기 자랑을 대놓고 하는 루오 덕분에 명원이 쪽팔리는 중이었다. 뭐라고 해야 적절한지 몰라서 명원은 일단 긍정했다.
“그럴지도? 그러면 수민은 지금 별을 보고 있는 중이네요.”
농담으로 받아치면서도 명원은 겸연쩍어서 김밥을 입에 우겨넣었다. 수민이 장난스럽게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아우 눈부셔!”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놀리는 모습은 루오랑 참 닮았네. 명원은 쓰레기를 모아 비닐봉지에 다시 넣었다.
먹고 나니 할 일이 없다. 둘은 다시 시트를 눕히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으니 눈의 착각인건지 아까보다 별이 더 많이 보였다. 둘은 별이 나오는 영화 대사나 소설 문장, 싯귀를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명원이 코린느 베일리 래(Corinne Balley Rae)의 Like a star 를 낮은 음성으로 불렀다.
Just like a star across my sky
Just like an angel off the page
You have appeared to my life
마치 내 하늘을 가로지르는 별처럼
천사처럼 살아서
내 삶에 나타났지
수민도 아는 노래였다. 흥얼거리는 사이 반짝거리는 빛 하나가 밤 하늘을 천천히 이동했다. 명원의 시선을 빛을 따르다가 수민에게 가 닿았다. 수민은 어느새 눈을 감고 있었다. 완전 무방비 상태의 얼굴,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편하고 행복해 보였다.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것이, 아마도 계속 맴돌고 있던 감정이 분출구를 찾아 터지듯 밀려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별을 보듯 나를 봐줄래요?
이 말이 내 속에서 나온 걸까, 아니면 나와 수민 사이에 떠돌고 있던 걸 내가 잡아챈 것일까? 후자이길 바라면서 명원은 손가락으로 수민의 볼을 콕 찔렀다. 말캉한 볼이 누르는 대로 들어갔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동시에 수민이 눈을 뜨고 명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수민의 눈동자에서도 빛이 반짝였다. 별은 하늘에도 공연장에도 수민의 눈동자 속에도 있었다. (끝)
글쓴이의 말
마무리가 성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시겠지만 제 원래 계획이 단편 드라마 하나 나올 정도의 이야기를 쓰는 거였어요. 그래서 이게 원래 제가 생각한 마무리가 맞습니다.
다만 충동적으로 쓴 이야기라 재미있을 법한 설정을 제대로 못써먹은 게 아쉬워요. 루오랑 수민이가 닮았으니 루오 대신 무대에 서는 일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제목이 '너에게 매달려'인 만큼 현우한테 목매는 수민이 모습을 더 그려보고 싶기도 했지만.... 빨리 정리하고 다음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더 재미있게 써 볼게요. 나에게 하는 다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