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전문의 하정훈 선생님은 나의 양육관, 교육관과 너무 부합하는 분이라 평소에도 참 좋아하던 분인데, 이번 영상은 유독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인스타에도 글을 남겼고 브런치에도 이렇게 글을 남긴다.
이 영상을 기점으로 또 하나 다짐한 것은 나도 책을 쓸 때 뇌피셜이 아니라 내 전문 실무 분야 안에서 쓰겠다는 다짐이다.
우리만 해도 내가 레슨을 하던 아이를 가르치는 건 아주 수월한데, 다른 이에게 레슨을 받던 아이를 가르쳐야 할 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쓰고 집중해서 레슨을 해야 한다. 뭐든 직접 손이 닿아야 기준이 생기고 분별력이 생긴다는 말을 다시 한번 짚고 싶다.
애 키우는 게 힘들다는 이상한 문화, 비위 맞춰주는 문화가 생겨나면서
“애들 가르치는 거 너무 힘들지 않아?”
“학부모들 상대하는 거 괜찮아? 요새 엄마들 장난 아니잖아”
이런 말을 꽤나 자주 듣는다. 크게 공감하지 못하던 질문들..
참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좋은 방향으로 자라고, 아이에 대한 진심을 부모와 함께 나누는 순간이 많아서인지 아이에 관해 학부모님들과 소통을 나누는 일이 나에게는 즐거운 시간이다. 부모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존재는 절대 없으니까.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되고 정말로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 교권 추락 이슈들을 보니.. 어쩌면 음악이라는 사교육 감투 아래 있던 교육이라 오히려 크게 침범당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진실은,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전해지면 그 어떤 부모도 그걸 거부하고 폄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애들이 잘 크는 걸 보는 것만큼 재밌는 게 어디 있을까?
텃밭을 가꾸듯 착착착 물 주고, 해 주고, 영양분만 잘 넣어주면 무럭무럭 쑥쑥 잘만 크는 게 아이들이다. 근데 물을 언제 줘야 하는지, 햇빛은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영양분은 어떤 게 좋은지-
그런 분별력을 갖고 있는 어른들이 점점 부족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 아픈 사건사고들이 많아지는 걸까..
학부모님들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첫 째는 무난하게 컸는데 둘째가 참 쉽지 않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둘째로 자란 나는 둘째 특유의 고집과 짜증, 예민에 공감이 되는 동시에 우리 엄마도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겠다 싶어 엄마한테 질문을 해 봤다.
“엄마 나 키우면서 조금 힘들었죠. 나 엄청 고집 세고 짜증 많고 예민해서 키우기 좀 힘들지 않았어요?”
우리 엄마, 전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 아니? 말을 안 들어서 네가 많이 맞았지”
이때 내가 느꼈던 게 "부모가 감당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나뉘겠구나"였다. 우리 엄마는 나를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를 교육할 수 있었던 거 같고, "얘가 왜 이러지" 보다는 "잘못된 건 계속 바로 잡아주리"라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거 같다.
이런 질문도 해봤다.
“엄마, 엄마는 딸이랑 아들이랑 좀 키우면서 다른 거 느끼셨어요? 아들이 힘들어요 딸이 힘들어요?”
“딸이 힘들지” (내가 생각한 대답이 아니었다..ㅎ)
“말을 안 듣잖아 너네. 말 안 듣잖아 너”
“아니 요새 아들맘들이 엄마로서 성별이 달라서 아들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엄만 아들 키우는 거 안 힘들었어요?”
“애마다 다른 거지~ 아들 딸이 어디 있어”
이 대화에서도 “키우기 힘들다”라는 개념이 지금 엄마들이 느끼는 “힘들다”와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부모 말씀을 새겨들어라. 얼마나 고생하려고 그러니"가 기본으로 깔려 있달까?
바른 길을 가르치는 데 한 번 말해서 듣질 않으니 '들을 때까지 말하기가 아주 피곤하고 힘들다'는 느낌과 '가르치는 거 자체가 힘들다'의 차이로 설명해야 할까-
옳은 말을 하면서도 혹여나 불편할 사람들이 마음에 걸려 주춤하게 될 때도 있었는데, 휩쓸리지 않고, 소신을 갖고, 옳은 방향을 말할 수 있는 힘을 기르리라고. 진짜 중요한 말을 흔들리지 않고 할 수 있으려면 더 뿌리를 단단해 내리는 길 밖에는 없다고.
나는 그렇게 다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