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고객 등극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은데.. 건축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축주의 유형은 '그저 믿고 맡겨주는 유형'이라고. 나 역시 그런 건축주가 되고 싶었다. 믿고 맡길 테니 저희 집을 하얀 도화지다 생각하고 마음껏 역량을 펼쳐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고객이 정말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나는 결코 그런 쿨한 고객이 될 수 없는 ㅈㄴ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따지고 보면 나랑 신랑은 고집이 센 편도 아니고 그렇게 까다로운 편도 아니다. 단지 취향이 또렷할 뿐이고, 아닌 건 아니다 명확하게 말할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집 리모델링과 관련된 일은 기다 아니다, 좋다 싫다를 정확하게 표현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평소보다 아주 죄금 더 고집을 부렸고, 아주 초큼 더 까다롭게 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평생 살 집이니까.
두 달간 주택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초반에 철거할 때만 빼고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현장에 들러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집 구조를 바꾸거나 목공 작업, 미장 작업 시에는 딱히 건축주가 할 것은 없지만, 어쨌든 내가 이토록 관심이 많고 애정이 많다는 것을 어필할 필요는 있다.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거나 고개가 갸우뚱 해질 때에는 고민하지 말고 바로 여쭤보는 게 좋다. '나중 되면 괜찮겠지..'하고 생각하던 것은 나중이 되어도 괜찮아지지 않더라. 오히려 '처음에 이야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가 될 뿐이다.
우리 집을 리모델링해주시는 분들, 특히 현장에 계신 소장님은 다행히도 나와 성격적으로 잘 맞는다. (참고: 나 혼자만의 생각임) 단 하나도 대충 하는 법이 없고, 무척 꼼꼼하게 하나하나를 잘 챙기시는 우리 우리 소장님. 나는 큰 것을 잘 못 보고 작은 것에 목숨을 거는 스타일인데, 소장님은 큰 그림도 보시면서 작은 것에 목숨을 거는 나의 의견도 대체적으로 수렴해주신다. 게다가 할 말은 하시는 성격이셔서 오히려 서로 간에 오해가 없고 소통이 잘 되는 것 같다. 단, 취향이 나와 조금 맞지 않을 때가 몇 번 있긴 있었다...
한 번은 주택 입구 쪽에 계단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예쁘고 깨끗한 타일로 갈 것이냐, 그냥 시멘트로 마감을 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대안이 있느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은 나의 의견대로 시멘트 위에 예쁜 돌을 박기로 했다. 돌을 박기로 한 날, 소장님은 돌이 가득 들어있는 푸댓자루를 들고 오셨는데 자루를 여는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샤랄라- 돌에서 옥빛이 났기 때문이다. 소장님은 옥 자갈이 너무 예쁘다며 그걸 계단에 뿌리자고 하셨고,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옥 자갈만 빼고 골라주세요!"
나와 소장님, 디자이너 대리님, 현장 반장님 넷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옥 자갈 푸댓자루에서 옥빛이 나지 않는 돌들만 고르기 시작했다. 제일 비싼 옥 자갈을 제외하고 제일 싸구려 돌들만 골라내는 이상한 작업이었다. 추운 날씨에 쭈그리고 앉아 몇십 분 동안 돌을 고르는데,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저 오늘부로 진상 고객 레전드에 등극하는 거 아닌가요? 하하핫.." 죄송한 마음을 담아 농담을 던졌고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사모님.. 이미 등극한 지 오래되셨습니다.."
헤헤.
까다로운 게 죄는 아니잖아요.....
소장님은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사모님이 계단에 돌을 직접 박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직접 박은 우리 집 계단.
까다롭게 굴수록 집은 예뻐진다.